명분
언어예절
잘못으로 벌을 받는 것보다 욕을 듣거나 업신여김을 받았을 때 더 괴로운데,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면 뻔뻔하다거나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고 한다.
‘위선’(僞善), 또는 ‘위선자’라는 욕이 있다. 욕말 치고는 점잖은 편이다. 맞은편에 진실·위악이 있다. 너그럽게 보면 속마음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이다.
제도·의례·관습 …들은 그 사회나 개인이 오랜 세월 어렵게 쌓고 다듬은 가치다. 여기도 꾸며서 굳힌 내용이 많긴 하지만, ‘아름다움’은 대체로 진실을 희생한 위에서 꽃을 피운다. 그러매 전통을 마냥 낡아서 깨뜨려야 할 허례허식으로 지목해서는 곤란하다.
요즘 역사·절제·예의를 팽개친 기발한 ‘작명’ 하나가 이땅 사람들을 어지럽힌다. ‘건국 60주년, 건국절’이 그것이다. 몇 해 전의 ‘제2 건국’은 그나마 ‘제2’라는 모자 덕분에 욕을 덜 먹었다. 그도 아닌 요즘의 ‘건국’은 아무리 잘 봐 줘도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 좁히고 끊고 비튼 작명이다.
좋은 말도 격과 명분이 어울리지 않으면 웃음거리가 된다. 잘 쓰던 ‘광복절·정부수립’을 그대로 쓰느니만 못하다. 아니면 적어도 임시정부, 40여년의 항일 투쟁과 희생, 남쪽 단독정부에 뒤이은 북쪽 체제를 아우르는 배포와 명분을 갖춘 이름을 찾아야 마땅하다. 설익은 정부라도 정부는 정부다. 그런 데서 하는 일이 아이들처럼 억지로 떼를 부리는 ‘위악’ 같아서야.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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