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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거리와 시내
땅이름
땅이름 연구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한 일석 이희승은 ‘시내’의 어원이 ‘골짜기’를 뜻하는 ‘실’과 ‘내’가 합쳐진 말임을 밝혀낸 바 있다. ‘밤실’이 ‘율곡’으로, ‘돌실’이 ‘석곡’으로 맞옮김되는 것을 고려하면 땅이름에서 ‘실’의 존재는 뚜렷하다. 뿐만아니라 물가나 냇가에서 잘 자라는 수양버들을 ‘실버들’이라 하는 까닭도 ‘시내’와 마찬가지로 ‘골짜기’와 관련을 맺기 때문이다.
골짜기의 뜻을 갖는 ‘실’은 차츰 마을 이름으로 쓰인다. 특히 경상도나 충청 지역에서 많이 찾을 수 있는데, 삼국시대 ‘신라’의 어원도 이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중부나 북부 지역에서는 이 말이 마을 이름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처럼 땅이름에 쓰이는 말이 지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고대 국어가 형성될 당시 이질적인 언어가 합쳐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학자들은 삼국시대 땅이름의 차이를 부각시키면서 삼국의 언어가 달랐음을 강조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었다.
강화도 교동에는 ‘시거리’와 ‘오래시’라는 땅이름이 쓰이고 있다. 이 말은 모두 ‘실’이 변한 말로 볼 수 있다. 이들 땅이름에서 ‘실’은 다른 말의 앞과 뒤에 모두 올 수 있음을 나타낸다. 땅이름에 쓰이는 말이 지역에 따라 달리 분포할 수 있는 이유는 말의 뿌리가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말이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가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땅이름의 차이도 살아가는 터와 관련을 맺게 될 것이다.
허재영/단국대 인재개발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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