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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방울꽃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보고 싶은 풀꽃은 식물도감을 여러 권 찾아야 했으나, 지금은 컴퓨터에서 크게, 작게, 앞으로도, 옆으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인터넷과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이 가져온 무척 행복한 성과다. 지나는 걸음마다 허투루 보지 않고 사진을 찍고 됨됨이와 추억을 기록해 둔다.
사진으로도 무척 많이 알려진 풀꽃에 ‘은방울꽃’이 있다. 이름 그대로 줄기에 조그만 방울이 매달려 있는데, 본디는 흰색이지만 고귀하게 느껴져서 ‘은’(銀)을 붙였다. 한자이름 ‘영란’(鈴蘭)도 방울이란 뜻이니까 모양에서 이름을 딴 전형적인 경우다.
영어이름은 ‘골짜기의 릴리’(lily of the valley)인데, 이 부분이 논란의 대상이 된다. 프랑스 발자크의 소설 ‘골짜기의 백합’은 사실은 ‘은방울꽃’을 잘못 번역한 것이고, 실제로 소설의 배경이 된 마을에서는 해마다 은방울꽃 잔치를 열고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하는 성경 구절(아가2:1)도 의심이 간다. 영어성경의 ‘로즈 오브 샤론’(rose of Sharon) 또한 ‘무궁화’를 일컫는 영어이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샤론의 ‘장미’도 아닌 ‘수선화’로 번역했는데, 기독교인들이 수선화와 백합으로 그린 게 사실은 무궁화의 일종이거나 은방울꽃일 가능성이 있다. 프랑스어나 히브리어가 영어로 된 것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굴절된 모습이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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