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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와 뜨레
‘차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먼저와 나중을 가리는 잣대를 뜻한다. 우리는 시간을 냇물이 흘러가듯 쉬지 않고 흐른다고 느끼면서 온갖 일이 그런 흐름 안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들을 먼저와 나중을 가려서 차례를 따지고 매긴다. 차례는 본디 한자말이었으나 이제는 그런 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지고 본디부터 우리말인 줄로만 알게 되었다. 한자가 제 본디 소리를 허물어서 우리말 소리에 안겨 들었기 때문이다. 한자가 제 본디 소리를 지키려 들었으면 지금 이것은 [차제]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제 본디 소리를 버리고 우리말 소리에 안겨 들어와야 이른바 ‘들온말’(외래어)이다.
‘뜨레’는 차례와 좋은 짝이 될 만한 우리 토박이말이다. 그러나 뜨레는 글말로 적힌 데가 없는 듯하고, 그래서 국어사전에 오르지도 못한 낱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린 시절 우리 고향에서 뜨레라는 낱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다. “사람이면 모두 같은 사람인 줄 아느냐? 사람에게도 천층만층 뜨레가 있는 것이다.” 사람답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돌려 세워놓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하는 말이다. 저런 사람은 뜨레가 낮으니 본뜨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섞지 말고 뜨레를 가려서 담아라.” 감자나 고구마를 캐어 그릇에 담을 적에 듣는 말이다. 큰 것은 큰 것끼리, 작은 것은 작은 것끼리, 크고 작은 뜨레를 가려서 그릇에 담으라는 뜻이다. 뜨레는 값어치의 무게, 값어치의 높낮이를 가늠하는 잣대를 뜻한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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