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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젖
지난 세기 칠십 년대에 위궤양을 앓던 나는 다방에 가면 늘 ‘우유’를 마셨는데, 우유를 달라면 아가씨는 언제나 ‘밀크’를 권했다. 짐짓 우유와 밀크가 어떻게 다르냐고 물으면 우유는 칠백 원이고 밀크는 천 원이라 했다. 값만 다르냐고 하면 우유는 가루를 타서 만들고 밀크는 병에 든 것을 준다고 했다. 우유나 밀크나 그게 그건데 한자말 우유는 칠백 원이고 영어 밀크는 천 원인 사실이 우스웠다. 그럼 우리말 ‘소젖’이면 값을 얼마나 받겠느냐며 말장난을 치곤했다.
신라가 당나라와 손잡고 백제 고구려를 무너뜨려 국학 출신과 당나라 유학생만 벼슬자리에 앉히면서 우리말은 한자말에 짓밟히기 시작했다. 그런 세월이 일천 삼백 년 동안 바로잡히지 않아 저 드넓은 요서·요동·만주 벌판을 죄 중국에 빼앗겼고, 우리말은 한자말에 짓밟혀 하찮고 더러운 것으로 낙인찍혀 굴러 떨어졌다. 그런 흐름은 아직도 끝나지 않아서 ‘어버이’는 ‘부모’에게, ‘언니’는 ‘형’에게, ‘아우’는 ‘동생’에게 짓밟혀 쫓겨나는 모습을 우리 눈으로 본다.
조선이 무너지고 일본과 미국이 덮치면서 일본말과 영어가 다시 우리말을 짓밟았으나 이제 일본말은 한자말 자리로 떨어지고 영어만 홀로 윗자리에 올라섰다. 소젖→우유→밀크, 집→건물→빌딩, 뜰→정원→가든 …. 이처럼 우리말은 한자말과 영어 밑에 이층으로 깔려 숨을 헐떡인다. 이런 우리말의 신세를 뒤집어 맨 윗자리로 끌어올려야 우리가 올바로 살아가는 문화 겨레가 아닐까?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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