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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어지다와 자빠지다
어느 대학교수가 “재수 없는 놈은 엎어져도 코 깨진다더니” 하며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엎어지면 아무리 재수 있는 놈이라도 코가 깨지기 쉽다. 이분은 “재수 없는 놈은 자빠져도 코 깨진다” 하는 속담을 잘못 끌어 썼다. 어찌 이분뿐이랴! 아무래도 요즘 젊은 사람의 열에 예닐곱은 ‘엎어지다’와 ‘자빠지다’를 제대로 가려 쓰지 못하는 듯하다. 제대로 가려 쓰자고 국어사전을 뒤져도 뜻가림을 제대로 해놓은 것이 하나도 없다.
‘엎어지다’는 앞으로 넘어지는 것이고, ‘자빠지다’는 뒤로 넘어지는 것이다. 두 낱말 모두 본디 사람에게 쓰는 것이었으나 사람처럼 앞뒤가 있는 것이면 두루 쓰였다. 비슷한 말로 ‘쓰러지다’가 있다. ‘쓰러지다’는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모로 넘어지는 것이다. 앞으로든 뒤로든 모로든 그런 걸 가리지 않으면 그냥 ‘넘어지다’ 한다. ‘넘어지다’는 ‘엎어지다’와 ‘자빠지다’와 ‘쓰러지다’를 모두 싸잡아 쓰는 셈이다. 사전에 오르지는 못했으나 우리 고향에는 ‘구불지다/굼불지다’도 있다. 이것은 가파른 비탈에서 넘어져 구르기까지 하는 것, ‘넘어지다’와 ‘구르다’를 보탠 것이다.
이것들과 뜻이 아주 다른 말이지만 뒤섞어 쓰는 것에 ‘무너지다’도 있다. 이것은 본디 물처럼 아래로 부서져 내린다는 뜻이다. 엎어지나 자빠지나 쓰러지나 넘어지나 일으켜 세우면 본디대로 되지만 무너진 것은 본디처럼 일으켜 세울 수가 없다. 그만큼 다른 낱말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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