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長詩)(二) - 김수영
시금치밭에 거름을 뿌려서 파리가 들끓고
이틀째 흐린 가을날은 무더웁기만 해
가까운 데에서 나는 人聲도 옛날이야기처럼
멀리만 들리고
눈은 왜 이리 소경처럼 어두워만지나
먼 데로 던지는 汽笛소리는
하늘끝을 때리고 돌아오는 고무공
그리운 것은 내 귓전에 붙어있는 보이지 않는 젤라틴紙
―나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재산처럼
外界의 소리를 濾過하고 彩色해서
宿題처럼 나를 괴롭히고 보호한다
머리가 누렇게 까진 땅주인은 어디로 갔나
여름저녁을 어울리지 않는 지팽이를 들고
異邦人처럼 산책하던 땅주인은
―나도 필경 그처럼 보이지 않는 누구인가를
항시 괴롭히고 있는 보이지 않는 拷問人
時代의 宿命이여
宿命의 超現實이여
나의 生活의 定數는 어디에 있나
미하(混迷)하는 아내며
날이 갈수록 간격이 생기는 骨肉들이며
새가 아직 모여들 시간이 못된 늙은 포플러나무며
소리없이 나를 괴롭히는
그들은 神의 拷問人인가
―어른이 못되는 나를 탓하는
구슬픈 어른들
나에게 彷徨할 시간을 다오
不滿足의 物象을 다오
두부를 엉기게 하는 따뜻한 불도
졸고 있는 잡초도
이 無感覺의 悲哀가 없이는 죽은 것
술취한 듯한 동네아이들의 喊聲
미쳐돌아가는 歷史의 反覆
나무뿌리를 울리는 神의 발자죽소리
가난한 沈默
자꾸 어두워가는 白晝의 活劇
밤보다도 더 어두운 낮의 마음
時間을 잊은 마음의 勝利
幻想이 幻想을 이기는 時間
―大時間은 결국 쉬는 시간
<1962.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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