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죽지세(破竹之勢)
- 대적(大敵)을 거침없이 물리치고 쳐들어 가는 당당한 기세.
《出典》'晉書' 杜預傳
위(魏)나라의 권신(權臣) 사마염(司馬炎)은 원제(元帝)를 폐한 뒤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무제(武帝:265-290)라 일컫고, 국호(國號)를 진(晉)이라고 했다. 이리하여 천하는 3국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오(吳)나라와 진(晉)나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다. 이윽고 무제는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 두예(杜預)에게 출병을 명했다. 이듬해(280년) 2월, 무창(武昌)을 점령한 두예는 휘하 장수들과 오나라를 일격에 공략할 마지막 작전 회의를 열었다. 이 때 한 장수가 이렇게 건의했다.
"지금 당장 오나라의 도읍을 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곧 잦은 봄비로 강물은 범람할 것이고, 또 언제 전염병이 발생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단 철군했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찬성하는 장수들도 많았으나 두예는 단호히 말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지금 아군의 사기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破竹之勢]'요, 대나무란 처음 두 세 마디만 쪼개면 그 다음부터는 칼날이 닿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인 데,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버린단 말이오."
두예는 곧바로 휘하의 전군을 휘몰아 오나라의 도읍 건읍(建業 : 南京]으로 쇄도(殺到)하여 단숨에 공략했다. 이어 오왕(吳王) 손호(孫晧)가 항복함에 따라 마침내 진(晉)나라는 삼국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천하를 통일했다.
옛날에 악의(惡毅)는 제서(齊西)의 한 번 싸음에서 승리하여, 강한 齊나라를 합쳤다.
지금 아군은 위세를 이미 떨치고 있다. 비유하면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다. 몇 마디를 쪼갠 다음에는 다 칼날을 맞아 쪼개어질 것이니, 다시 손을 댈 곳이 없다.
昔樂毅藉齊西一戰 以幷彊齊 今兵威己振 譬如破竹 數節之後 皆迎刃而解 無復著手 處也
【동의어】영인이해(迎刃而解), 세여파죽(勢如破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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