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指鹿爲馬)
-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하는 것을 가리킴.
《出典》'史記' 秦始皇本紀
秦나라 시황제가 죽자 측근 환관인 조고(趙高)는 거짓 조서(詔書)를 꾸며 태자 부소(扶 蘇)를 죽이고 어린 호해(胡亥)를 세워 2세 황제로 삼았다. 현명한 부소보다 용렬한 호해가 다루기 쉬웠기 때문이다. 호해는 '천하의 모든 쾌락을 마음껏 즐기며 살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어리석었다고 한다. 어쨌든 조고는 이 어리석은 호해를 교묘히 조종하여 경쟁자인 승상 이사(李斯)를 비롯, 그밖에 많은 구신(舊臣)들을 죽이고 스스로 승상이 되어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자 역심이 생긴 조고는 중신들 가운데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이렇게 말했다.
"폐하, 말[馬]을 바치오니 거두어 주시옵소서."
"승상은 농담도 잘 하시오.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指鹿爲馬]'……. 어떻소? 그대들 눈에도 말로 보이오?"
말을 마치자 호해는 웃으며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잠자코 있는 사람보다 '그렇 다'고 긍정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고는 부정한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여 버렸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趙高欲慰亂 恐群臣不聽 乃先設驗 持鹿獻於二世曰 馬也 二世笑曰 丞相誤邪 謂鹿爲馬. 問左 右 左右或? 或言馬 以阿順趙高 或言鹿者 高因陰中諸言鹿者以法 後群臣皆畏高.
그러나 천하는 오히려 혼란에 빠졌다. 각처에서 진나라 타도(打倒)의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중 항우와 유방의 군사가 도읍 함양(咸陽)을 향해 진격해 오자 조고는 호해를 죽이고 부소의 아들 자영(子?)을 세워 3세 황제로 삼았다.(BC 207) 그러나 이번에는 조고 자신이 자영에게 주살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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