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합지졸(烏合之卒)
// ① 갑자기 모인 훈련 없는 군사.
② 규율도 통일성도 없는 군중. 《出典》'後漢書' 耿龕傳
전한(前漢) 말, 대사마(大司馬)인 왕망(王莽)은 평제(平帝)를 시해(弑害)하고 나이 어린 영을 세워 새 황제로 삼았으나 3년 후 영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국호를 신(新)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잦은 정변과 실정(失政)으로 말미암아 각지에 도둑떼가 들끓었다. 이처럼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유수(劉秀)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왕망(王莽) 일당을 주벌(誅伐)하고 경제(景帝)의 후손인 유현(劉玄)을 황제로 옹립(擁立)했다. 이에 천하는 다시 한나라로 돌아갔다. 대사마가 된 유수가 이듬해 성제(成帝)의 아들 유자여(劉子輿)를 자처하며 황제를 참칭하는 왕랑(王郞)을 토벌하러 나서자, 상곡(上谷) 태수 경황(耿況)은 즉시 아들인 경감(耿龕)에게 군사를 주어 평소부터 흠모하던 유수의 토벌군에 들어 갔다. 그때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갑자기 행군을 거부하는 바람에 잠시 동요가 있었다.
"유자여는 한왕조(漢王朝)의 정통인 성제의 아들이라고 하오. 그런 사람을 두고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이오?"
격노한 경감(耿龕)은 두 사람을 끌어낸 뒤 칼을 빼들고 말했다.
"왕랑은 도둑일 뿐이다. 그런 놈이 황자(皇子)를 사칭하며 난을 일으키고 있지만, 내가 장안(長安:陝西省 西安)의 정예군과 합세해서 들이치면 그까짓 '오합지졸(烏合之卒)'은 마른 나뭇가지보다 쉽게 꺾일 것이다. 지금 너희가 사리(事理)를 모르고 도둑과 한패가 됐다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치 못하리라."
그날 밤, 그들은 왕랑에게로 도망치고 말았지만 경감(耿龕)은 뒤쫓지 않았다. 서둘러 유수의 토벌군에 합류한 경감(耿龕)은 많은 무공을 세우고 마침내 건위대장군(建威大將軍)이 되었다.
우리가 돌격 기병대를 일으켜 써 오합지중(烏合之衆)을 치는 것은 썩은 고목을 꺾고 썩은 것을 깎음과 같을 뿐이다.
發突騎以徊烏合之衆 如?枯腐耳.
【동의어】오합지중(烏合之衆)
【유사어】와합지중(瓦含之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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