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전성시(門前成市)
// 권세가나 부자가 되어 집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함.
《出典》'漢書' 孫寶傳 鄭崇傳
전한(前漢) 말, 11대 황제인 애제(哀帝 : B.C 6-7) 때의 일이다. 애제가 즉위하자 조저의 실권은 대사마(大司馬) 왕망(王莽)을 포함한 왕씨 일족으로부터 역시 외척인 부씨(傅氏), 정씨(丁氏) 두 가문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당시 20세인 애제는 동현(董賢)이라는 미동(美童)과 동성연애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중신들이 간(諫)했으나,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그 중 상서복야 (尙書僕射) 정숭(鄭崇)은 거듭 간하다가 애제에게 미움만 사고 말았다. 그 무렵, 조창(趙昌)이라는 상서령(尙書令)이 있었는데 그는 전형적인 아첨배로 왕실과 인척간인 정숭을 시기하여 모함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어느날 조창은 애제에게 이렇게 고했다.
"폐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정숭(鄭崇)의 집 문 앞이 저자를 이루고 있습니다.[門前成市] 이는 심상치 않은 일이오니 엄중히 문초하시옵소서."
애제는 그 즉시 정숭을 불러 물었다.
"듣자니, 그대의 '문전은 저자와 같다[君門如市]'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예, 폐하. '신의 문전은 저자와 같사오나[臣門如市]' 신의 마음은 물같이 깨끗하옵니다. 황공하오나 한 번 더 조사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애제는 정숭(鄭崇)의 소청을 묵살한 채 옥에 가뒀다. 그러자 사예(司隸)인 손보(孫寶)가 상소하여 조창의 참언(讒言)을 공박하고 서인(庶人)으로 내쳤다. 그리고 정숭(鄭崇)은 그 후 옥에서 죽고 말았다.
尙書令趙昌?諂 素害崇 知其見疏 因奏崇 與宗族通 疑有姦 請治 上責崇曰 君門如市人 何
以欲禁切主上 崇對曰 臣門如市 而臣心如水 願得考覆 上怒下崇獄窮治 死獄中.
【유사어】문전여시(門前如市), 문정여시(門庭如市)
【반의어】문전작라(門前雀羅), 문외가설작라(門外可設雀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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