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야행(錦衣夜行)
/ 비단옷을 입고 밤에 간다는 뜻으로, 아무 보람없는 행동을 가리킴.
《出典》'漢書' 項籍傳 / '史記' 項羽本紀
유방(劉邦)에 이어 진(秦)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입성한 항우(項羽)는 유방과 대조적인 행동을 취했다. 우선 유방이 살려둔 3세 황제 자영(子?)을 죽여 버렸다.(B.C 206) 또 아방궁(阿房宮)에 불을 지르고 석 달 동안 불타는 것을 안주 삼아 미인들을 끼고 승리를 자축했다. 그리고 시황제의 무덤도 파헤쳤다. 유방이 창고에 봉인해 놓은 엄청난 금은 보화(金銀寶貨)도 몽땅 차지했다. 모처럼 제왕(帝王)의 길로 들어선 항우가 이렇듯 무모하게 스스로 그 발판을 무너뜨리려 하자 모신(謀臣) 범증(范增)이 극구 간했다. 그러나 항우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오랫동안 누벼온 싸움터를 벗어나 많은 재보와 미녀를 거두어 고향인 강동(江東)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러자 한생(韓生)이라는 사람이 또 간했다.
"관중(關中)은 사방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요충지인데다 땅도 비옥합니다. 하오니 이곳에 도읍을 정하시고 천하를 호령하십시오."
그러나 항우의 눈에 비친 함양은 황량한 폐허일 뿐이었다. 그보다 하루바삐 고향으로 돌아가서 성공한 자신을 과시(誇示)하고 싶었다. 항우는 동쪽의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귀한 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錦衣夜行]'과 같아 누가 알아줄 것인가…."
항우에게 함양에 정착할 뜻이 없음을 알게된 한생은 항우 앞을 물러나가 이렇게 말했다.
"초(楚)나라 사람은 '원숭이에게 옷을 입히고 갓을 씌워 놓은 것처럼 지혜가 없다'고 하더니 과연 그 말대로군."
이 말을 전해 들은 항우는 크게 노하여 당장 한생을 잡아 삶아 죽였다고 한다.
【동의어】의금야행(衣錦夜行), 수의야행(繡衣夜行)【반의어】금의주행(錦衣晝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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