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둘 - 생활속에 피어나는 웃음안개
마이카의 여인 - 김진옥(여.경기도 군포시 금정동)
안녕하세요?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삼수생인 40대 중반 아줌만데, 오늘은 초보때 사지 떨리던 얘기 좀 하면서 또 도전해보려 합니다. 재작년 옆집에 살던 변순자 꼬임에 넘어가 저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자동차 운전학원에 나가게 됐지요. 학원비도 변순자가 다 꿔주며 아무 때나 돈 생기면 갚으라는 바람에 얼떨결에 따라가기는 했는데 가던 날부터 하여간 후회 많이 했지요. 첫날부터 긴 몽둥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한쪽 다리를 약간 절뚝거리며 나이도 몇 살 안먹은 선생이 옆에 올라앉더니, 톤이 굵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겁니다.
"아줌마! 나는 원래 두 번 설명은 안하는 사람입니다. 잘 듣고 보고 배우세요.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성질도 좀 나쁩니다. 개중엔 악질로 머리가 나빠 엄청 골탕을 먹이는 사람들이 몇 명씩 있는데, 자기 머리 나쁜 건 생각 않고 내가 심하다며 사무실을 들락거리는데, 아줌마는 절대 그런 축에 끼지 마십시오."
그 선생은 오만 인상을 쓰며 제게 미리 엄포를 놓더군요. '앞으로 이 노릇을 어찌할꼬.' 저는 바짝 긴장하며 남자 선생의 설명을 잘 들으려 눈 깜빡이는 수도 줄여가며 무릎 밑에 있는 발동작을 자세히 보려는 동안 제 몸은 점점 숙여져 젊은 남자 선생 몸에 밀착되어 있었죠. 게다가 긴장 탓에 숨소리도 거칠어져 갔고, 아무리 죽이려 애를 써도 더욱 커져가는 제 숨소리에 애태울쯤 남자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답니다.
"아줌마! 저리 좀 떨어져 앉아요. 내가 눌려서 맘대로 동작을 할 수가 없잖아요."
저는 화들짝 놀라 얼른 몸을 뒤로 젖혔죠.
"처음엔 브레이크니 클러치니 설명해도 나이 들은 아줌마들은 머리에 잘 들어가지 않으니 하여간 요거는 1번, 요것은 2번, 또 요게 3번입니다. 내가 구령 붙이는 대로 1번은 왼발로, 2번 3번은 오른발로 살짝 밟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날부터 저는 뼈를 깎는 것보다 더 아픈 후회와 번민으로 몇 달, 아니 거의 일 년을 보내며 하루에도 수십번 '때려 치워라, 때려 치워라'하는 또 다른 저와 싸워야 했습니다. 얌전히 들어앉아 살림 잘하는 저를 데려다 왜 이 '쌩고생'을 시키느냐구요. 나중에 안 일이지만 10명 되는 단체에겐 굉장히 많은 할인혜택이 있었대요. 끌어모으다가 모자라는 한 명에 제가 걸려든 겁니다. 시퍼런 칼날이 허공을 가르며 내는 '획-익 휙'소리를 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1번 3번 다시 2번 그렇게 척척 발이 떨어지나요? 1번 꽉 밟고 3번 살며시 누르고.... 그런데 선생이 느닷없이 제게 고함을 치는 거예요.
"아줌마! 동시에 1번을 천천히 놓으라고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어? 왼쪽 발에 본드 발랐어? 아줌마 도대체 학교 어디 나왔어? 유치원 애들도 그만큼 했으면 알아듣겠다. 에-이 혈압 올라."
이젠 숫제 '야, 자'하는 거예요. '야! 이놈아 니가 아무리 그런다고 내가 옛날 초등학교밖에 못 나와서 그렇다고 불 것 같으냐? 그리고 너만 혈압 오르냐? 나는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으이구-. 성질대로 하면 몇째 아래 동생 같은 너 면상 한방 갈기고, 천년 만년 잘 해먹고 살라고 소리치고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만, 머 아직도 변순자에게 갚아야 할 고래 심줄보다 질긴 내 생돈 135000원이 남았길래 그냥 참는다. 그래, 참자. 개같이 배워 정승같이 합격하자.' 몇 끼를 굶어도 빠지지 않던 제 체중은 날로 쌓이는 스트레스와 상하는 존심 때문에 줄어들었고, 변순자에게 갚아야 할 빚 때문에 우리집 식탁은 날로 여위어갈 즈음, 드디어 안산으로 시험을 보러 떠나며 웬수 같은 저 얼굴 두 번 다시 안 보게 되길 기도했죠. 그리고 안산 시험장에 도착해 기다리는 40분 동안 12번이라는 기록적인 믿기지 않을 만큼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진은 다 빠지고 차에 올라 제대로 차체 한 번 움직여보지 못한 채 사지를 덜덜 떨며 내려와야 했고,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러더군요. 누군 사정해서 한 번 더 봐서 됐다구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저도 한 번만 더 해보면 틀림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구요. 그러나 원서를 반납하는 조그만 창구엔 벌써 제 원서가 나와 있더군요. 하지만 전 용기를 내어 조그만 창문 안에 큰 얼굴을 들이밀며 애원했죠.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누구에게 부탁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안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울먹였죠.
"한 번만 더 보게 해주이소, 네. 오줌이 너무 자주 마렵고 너무 긴장해서 못했어예. 한 번만, 이번엔 자신 있어예. 에?"
저는 통곡을 하며 애원했지만 누구 하나 쳐다보는 사람도 없더군요. 저는 슬며시 원서를 잡아당겨 들고 돌아왔죠. 그리고 그 뒤로 지옥 같은 학원으로 세 번 더 되돌아간 뒤 드디어 면허증을 손에 쥐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저는 차가 갖고 싶어 미칠 것 같았어요. 설거지를 하다 바가지만 잡아도 운전대를 잡은 듯 돌려보고, 잠을 자려고 누우면 빨간 내 차를 타고 친정에도 갔다오고 시집에도 갔다오고 하는 그림이 천장에 환상처럼 보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답니다. 차살 형편이 안되는 줄 알기 때문에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생가슴을 앓았죠. 그러다보니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어디 아프냐고 물었고, 전 잠을 못 자서 그런다고만 했죠. 시장엘 가도, 저 예쁜 차는 어떤 여자가 타고 시장엘 왔을까? 미장원엔? 목욕탕엔? 어딜 가도 차만 눈에 띄고..., 온통 내 머릿속에 차 생각밖에 없더군요. '아이구, 내 팔자야.' 전 한숨을 쉬며 팔자 타령도 해보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봤지만, 막상 무엇을 해 돈을 벌어야 할지 생각이 나질 않더군요. 그런데 구세주는 뜻밖에 가까운 곳에서 나타났어요. 과천에 있는 동생이 새차를 바꾸면서 쓰던 차가 아직 그런대로 쓸만하니 누나가 타려면 갖다 타라는 전화가 온 거예요. 그런대로 쓸만하지 않아도 굴러가기만 하면 황공하다는 생각에 당장 쫓아가 서류를 넘겨받아 시청에 가서 모든 수속부터 끝냈어요. 그리고 다음날 오후 동생이 몰고 온 차를 대면하는 순간, 새카만 선글라스와 빨간 모자를 쓰고 긴 머플러를 뒤로 휘날리며 드라이브하는 제 모습을 상상했던 저는 적잖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88년형 구형에다 페인트가 녹아 벗겨진 보닛은 완전히 흰머리 독수리의 머리같이 희끗희끗했고, 와이퍼 한쪽은 반 동강나 달아났고, 오른쪽 라이트는 반 애꾸였습니다. '그래, 좋다. 지금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리게 생겼느냐?' 토요일과 일요일 내내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동생에게 10시간 연수를 받고, 전 드디어 혼자서도 곧잘 하게 되었지요. '하- 드디어 마이카. 나도 마이카의 여인이 되었다.'
목에 힘을 주며 폼을 내며 끌고 나가 보지만 거리에 시선은 '쯧쯧 웬만하면 하나 거시기 하지. 그 연세에 형편이 그렇게 어렵나'하는 투더군요. 하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았죠. 월요일, 저는 큰 아들에게 말했죠.
"얘야, 엄마가 데려다줄께."
"엄만, 내 목숨이 엄마 건 줄 알아?"
단박에 퇴짜를 맞았고, 다시 둘째에게 부탁했죠.
"엄마가 학교까지 태워다 주면 안되겠니?"
"엄마! 나도 아직 갈 때가 안됐잖아?"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남편에게 애원했어요.
"여보-옹, 제가 역전까지 태워다줄게요."
"니 미쳤나? 아들이 아직 저렇게 어린데, 둘 중 하나라도 남아서 끝까지 책임져줘야 안되겠나?"
남편은 콧속에 큰 덩어리가 튀어나올 만큼 코방귀를 뀌더군요.
"흥."
주인 잘못 만난 '똥차'는 하루가 다르게 그 기능과 몸체게 쇠약해져 갔고, 여기저기 박히고 찌그러지고.... 하여튼 그 동안 깨진 돈만 해도 엄청나나, 그럴 때마다 저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여보-옹, 오늘 또 어떤 나쁜 놈이 내 차를 박고 메모지 한 장 없이 내뺀 거 있지?"
이런 저의 변명이 처음엔 남편에게 효과가 있었지요.
"어떤 나쁜 놈들이 그런 몹쓸 짓을 하고 그냥 내빼! 우리 나라는 그런 양심없는 인간들이 많아서 아직도 멀었어."
그러나 이렇게 말하던 남편도 나중엔 왜 허구 많은 차중에 맨날 우리 차만 박고 긁고 도망 가냐며 약간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부부생활에 크나큰 위기까지 몰고 온 사건이 터지고 말았답니다. 우리 집은 역에서 걸어서 20분 거린데, 그날은 폭우가 쏟아졌고, 우산을 써도 옷이 다 젖어버리겠다는 생각에 저녁을 일찍 준비해 놓고 저는 역으로 마중을 나갔죠. 뜻밖의 마중에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서 남편을 부르며 차문을 열어주니, 남편은 그리 싫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마디 하더군요.
"길 미끄러운데 뭐하러 나왔노."
저는 달렸죠. 자랑스럽게 남편을 태우고 빗속을 달렸어요. 그런데 차가 좌회전 신호를 받아야 하는 곳까지 왔을 때 갑자기 시동이 스르르 꺼져버리는 거예요. 저는 클러치를 너무 약하게 밟고 있었나 생각하며 다시 힘주어 클러치를 밟고 시동을 걸어 보았지만 그렁-그렁- 소리만 요란하지 시동이 걸리지 않았어요. 좌회전 화살표시는 그려졌지, 시동은 안 걸리지, 뒤차들은 난리라도 난 듯이 경적을 울려대지, 정말이지 암담하더군요. 옆자리 남편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어떻게 된 거냐고 다그치는데, 전들 알겠어요. 할 수 없이 저는 쏟아지는 빗소리 때문에 더욱 목청을 돋우며 소리쳤죠.
"오라이- 오라이, 왼쪽으로 완전히 꺾어요. 예 예 됐어요. 스톱."
이렇게 소리치며 차를 주먹으로 쾅쾅 쳐가며 대충 차들을 빼주고 난 다음, 제 몸을 내려다보니 세상에 얇은 여름 옷들은 거머리같이 제 몸에 찰싹 달라붙어 그렇게도 처절하리만치 애써 감추려 평소 거리를 걸을 때 숨도 안 쉬고 입술이 파리해질 정도로 들이밀고 다니던 중년 부인의 '똥배'는 생긴 대로 적나라하게 튀어나와 빗속에서 바가지가 춤을 추듯 상하좌우로 중심없이 흔들렸고, 속알머리는 다 빠져버린 지 오래인 테두리 몇 가닥 머리들은 물먹은 창호지처럼 자꾸만 밑으로 처져 제 시야를 가렸어요. 정말이지 오늘의 이 모욕은 죽을 때까지 잊혀질 것 같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도 남편은 차 속에서 꼼짝도 않고 눈에 독기가 서린 채 앉아 있더군요.
"보이소. 이게 뭐 내 잘못인교? 나와서 차 좀 밀어주이소. 옆에다 대 놓고 가야지예?"
그러자 남편은 소릴 지르는 거예요.
"내 언제 이 똥차 몰고 나 마중나오라고 삐삐 쳤더나?"
"아니예. 나는 당신 옷 젖을까봐 생각해서 나왔지예."
"시끄럽다! 그래도 뭘 잘했다고. 내 다시 이차 한 번만이라도 타면 내 인간이 아이다."
그러더니 양말 속에서 담뱃갑을 꺼내더니 '에이씨'하면서 담뱃갑을 길 옆 숲에 내동댕이치곤 뒤도 안 돌아보고 혼자 가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화가 나서, 뒤따라가 말했어요.
"내가 무신 죽을 죄졌나? 이 밴댕이 속 같은 인간아. 소갈머리라곤 여자만도 못한 인간아 내가 뭐 잘못했나. 말해봐라. 그기 그렇게 화낼 일이가?"
악이 나서 고래고래 소릴 지르자 용감하게 걸어가던 남편이 갑자기 돌아섰어요.
"이기 그래도 잘했다고, 니 여기서 한번 죽어볼래?"
그러면서 그의 손이 쏟아지는 빗속으로 번쩍 치켜 올려지는 거예요.
"아유, 성질대로 하면 그냥 콱!"
하지만 못 때리지요. 그 이후로 이날까지 남편은 밤마다 벽을 사랑하게 되었고, 저는 허구헌날 그의 등짝만 바라보며 잡니다. 그날 굉장히 화가 많이 났나봐요. 여간해서 가슴을 보여주지 않네요. 이미 쌀쌀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데. 언제면 남편의 넓은 가슴에 안겨 잠들 수 있을지, 두 분 무슨 묘약 없나요?
PS. 자동차 병원비라도 벌려고 조그만 전자회사에 취직했지요. 하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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