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인도 바가지와 임신(?) - 김기순(여.전북 부안군 하서면 언독리)
육십 고개를 앞두고 있는 아직도 젊은 언니랍니다. 나이먹은 사람이 주책없지만 우리 영감과 인도 성지순례여행에서 일어난 아주 별 희한하게 생긴 바가지 이야기를 써서 보냅니다.
얼마 전이었습니다. 그날도 들에 나가 고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막 저녁밥 한술 뜨는데 따르릉 전화벨 소리가 울리더군요.
“여보세요. 거그 김아무게 보살님댁이지요?”
“맞는디오. 근디 거기 어디데요?”
“예, 여기는 보살님이 보살펴 주시는 절 주지스님입니다.”
“아이고매요, 그 동안 모심는다고 워낙 바쁘다본게 자주 절에 가지를 못했구먼요.”
용건인즉, 그 동안 두 분 내외분 불심에 감동도 했고, 이번 기회에 부처님의 고향이신 인도에서 부처님의 발자취도 한번 더듬어 보시고 불심을 키우고 오시라고 성지순례를 모시고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한국이 아니라 머나먼 외국이라 음식이 입에 맞지가 않을 것 같아 간단히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음식과 작년 여름에 먹고 남은 미숫가루가 생각이 나더군요. 어렵게 미숫가루도 챙겨 우리 일행은 인도로 출발했지요. 인도에 도착해 우선 버스로 숙소에 가기로 했는데 웬 버스가 다 낡아빠진 폐차 직전의 고물 버스였고, 길도 우리나라 60년대 시골길이었습니다. 드디어 도착해서 보니 숙소는 아주 깔끔하고 정돈이 잘된 주택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여관 같은 집인가 보더군요. 할아버지와 저는 우선 어찌나 배가 고픈지 뭐든지 간단히 요기 좀 할 겸 미숫가루를 타서 먹으려고 그릇을 찾으러 욕실에 들어갔는데 이상하게 생긴 바가지 하나가 보이더군요, 깨끗하기도 하구요. 저는 ‘이 나라 바가지는 별 희한하게 생겼구나.’생각하고 그 바가지에다 물을 붓고 미숫가루를 타서 우선 저부터 쭉 마시고는 우리 영감에게도 미숫가루를 타서 갖다드리니 바가지 바닥에 묻은 미숫가루마저 손가락으로 싹싹 씻어 손가락까지 쭉 빨아드시더군요. 미숫가루는 금방 먹어도 소변이 한 번보고 나면 금세 배가 고파지기 때문에 서둘러 식사 준비를 하느라 그 이상하게 생간 바가지에다 쌀을 담아 싹싹 씻어 밥을 맛있게 해먹었지요. 밥이다 미숫가루다 이것저것 먹었더니 배가 아파왔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에 들어가보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변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 급해 옆방 스님께 찾아가 물어보니 아 글쎄, 이곳에서는 변기 대신 그 이상한 바가지를 대용으로 쓴다는 겁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비위가 약해져 그 자리에서 ‘욱-’하고 구토를 하고 말았지요. 영감은 그놈의 바가지 때문에 우리 마누라 죽이겠다며 안절부절 못하면서 어디서 구해왔는지 압핀으로 저의 손가락에 피를 내주어 조금은 살 것 같더라구요.
“야! 이놈의 할망구야, 내가 아무리 보아도 그 바가지가 애기들 변기통하고 비슷하고 조금 커서 그렇지 이상하다 했는데, 그 바가지에다 미숫가루 타서 먹으라고 주고, 쌀까지 씻어 밥을 해줘.”
영감은 화를 버럭 내고는 잠을 안 자고 저녁 내내 욕실에 들락거리면서 ‘욱욱욱’하면서 양치질을 수없이 하더군요. 그후 전 지금도 밥과 미숫가루를 먹지 못하고 녹두죽 미음을 먹고 있는데 영감은 무딘 사람이라 그런지 오늘 아침 밥을 두 그릇이나 비우고 논에 일하러 나가더군요. 오후 늦은 시간, 집안일을 대충 해놓고 잠깐 쉬고 있는데, 서울에사는 큰딸한테서 전화가 왔더군요.
“엄마 올 여름에도 미숫가루 할 거지. 장서방이 워낙 좋아하니 올해에는 우리 것도 넉넉하게 해.”
“야, 이놈의 가시나야, 너 지금 나이가 몇 살인디 지금까지 에미더러 미숫가루 해달라고 하냐? 너는 손이 없냐? 발이 없냐?”
말하는 사이에도 속에서 구토가 나와 계속 ‘욱-욱’거리다가 전호를 끊고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보니 어느새 논에서 돌아온 그이가 부안 읍내 시장에 들러 사골을 사왔다며 제게 이야기하더군요.
“이 할망구야, 3개월 간은 조심해야 한다니까 들일은 걱정말고 집에서 꼼짝 말고 몸조리 잘해야 해.”하면서 윗방에 들어가 백지족이를 내놓고 붓글씨로 한문으로 뭐엇인가 심각하게 쓰더라구요.
“저놈에 노랭이 영감탱이가 무슨 일이지. 사골을 다 사오고...”
또 3개월 간은 조심하라며 붓으로 길 영자에 이을 도자를 쓰다가 ‘아니지’하면서 고개를 꺄우뚱하는 거예요. 그때 ‘따르릉 따르릉’전화가 오더군요. 광주에 사는 막내딸 전화였는데 다짜고짜 “엄마, 나 오서방한테 창피해서 못살어. 엄마 지금 나이가 몇 살이유. 50이 넘은 나이에 남들 창피하지도 않수? 몇 개월이유? 3개월은 되었수? 아빠는 그렇지 않아도 둘이만 살다보니 적적하고 외로웠는데, 늦게나마 자식을 갖게 되어 기분이 좋다며 허허허 웃으시던데, 두 분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니유?”
막내딸은 울고 불고 난리더군요. 전화를 받고 가만히 생각하니 그놈의 인도 바가지 사건으로 이렇게 사건이 비약되고 말았지요. 저는 어찌나 화가 나던지 ‘자그들 코끼리 알랑방구 뀌는 소리 허고 자빠졌네. 이놈의 영감탱이 대머리 뒤꼭지에 머리 몇 개 난 것 마저 아주 다 뽑아 버릴끼여. 저놈의 영감탱이가 소사골까지 사와 늦게나마 마나님 귀한 걸 아는가 보다 했더니, 뭐 3개월 간은 조심해야 한다고...’ 아! 그래서 어제 저녁 목관도 깨끗이 허고, 참으로 오랜만에 안아달라고 했더니 늙어갈수록 더 밝힌다고 그 창피를 주고 등을 돌리고 코까지 드르릉 드르릉 골고 잠을 자더군요. 영감이 그러대요.
“그러면 임자 임신헌 게 아니라 그때 인도의 그 이상한 바가지 때문에 그런거여...?”
영감은 계면쩍어하며 섭섭한 눈치더군요.
“임자 오늘 저녁 일찍 먹고 잡시다. 나 얼릉 재너머 수랑뜰 논 물꼬 보고 올랑께. 저녁 준비 일찍 해놓고 목관 깨끗이 하고 기다려. 혹시 알어, 부처님이 늦동이 하나 점지해 주실지?”
하면서 논으로 향하는 영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지요. 몇 살만 젊다면... 하나 낳고 싶은디... 주책이겠지요. 그나저나 그놈의 인도 바가지는 언제쯤이나 저의 속을 안 썩일란지, 지금 이 순간에도 속이 지랄났는데... 급해서 이만 쓰고 화장실에 좀 갔다 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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