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우리 삼순이, 책임져! - 오창선(여,대구시 서구 중리동)
저는 기찻길 옆 조용한 마을에 사는 주부입니다. 촌동네에 사는 제게도 문 좀 열어주실 수 있죠?
재작년 여름 무더위가 극도로 기승을 부리던 때, 남편은 순하고 살이 오통통하게 오른 변견 한 마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보신용이냐구요? 아닙니다. 경비용입니다. 대구의 무더위를 잘 아시죠? 그나마 창문 현관문 있는 대로 다 열어 놓으면 한증막은 면하는데, 밤손님이 무서워 꼭꼭 닫고 자다보니 너무 더워서 잠도 설치고 어떨 땐 숨이 다 막힐 지경이더라구요.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도 괜찮을 방법으로 생각하던 게 누가 대문 근방에만 얼씬만 해도, 담만 넘봐도 요란스레 짖어댈 개를 사다놓자는 것이었고, 그래서 삼순이가 온 것입니다. 삼순이는 우리 변견 이름입니다. 남편은요, 사람을 물어뜯어 놓으면 치료비를 물어줘야 할 테니, 그냥 짖기만 하는 개, 그것도 인기척만 나면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개가 최고라며 순둥이에다 겁쟁이인 개를 사온 겁니다. 심장 강한 놈은 도둑이 월장을 해도 지 먹이만 안 건드리면 '그까짓 것' 하며 봐준다나요. 그러나 남편의 굳 아이디어는 다음날로 종쳤죠. 삼순이는 밤에는 아예 지 집에서 숨죽이고 엎드렸고, 낮에도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 사정없이 꽁지를 확 내리고 집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으니까요. 기껏해야 낑낑대는 정도지 절대 짖어대는 법이 없는 겁니다. '그러면 그렇지, 누가 변견 아니랠까봐.' 남편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어쩌겠어요. 워낙에 겁많은 놈을 사온게 죄지.
그런데 이웃집엔 진돗개가 있는데, 남편은 이번엔 그런놈을 사오겠다고 별렀지만, 금액이 수십만원 나간다는 소리에 엄두도 못 내는 눈치였습니다. 남편은 가끔 그 집 앞을 자나다 열린 대문으로 늠름하게 서 있는 진돗개를 보기라도 하면, 삼순이 집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한숨을 푹푹 쉬며 말한답니다.
"삼순아, 삼순아, 니 왜 사노?"
그러던 남편에게 야무진 꿈이 생겼습니다. 이웃집 진돗개에게 삼순이를 시집보내서 진돗개 새끼를 얻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서너 마리 낳으면 그중에 한 마리는 아빠 닮은 놈이 있을 것이구만."
정말 야무졌죠. 어느 날 남편은 삼순이를 목욕시키더니 귀뒤에 딸아이 꽃머리핀까지 꽂아서 진돗개네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는 개자랑이라도 하듯 늘 대문이 열려 있는 그 집에 삼순이를 들여보냈습니다. 그러나 삼순이는 낑낑거리며 남편에게 엉겨붙기만 하고, 진돗개는 어디 똥개 하나 왔나, 소 닭 보듯 하더랍니다. 상심한 남편은 그냥 돌아왔고, 이번에는 슈퍼에 가서 오징어 한 마리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더니 구워서 다리 하나를 삼순이한테 먹이고, 또 하나를 뚝 떼서 삼순이 꼬리하고 등에다 마구 문지르는 겁니다. 이름하야 '향수작전' 이래나 뭐래나. 그런 후 삼순이를 다시 데리고 그 집에 가서 대문안에 밀어넣고 아예 대문을 닫아주고 왔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도무지 성공할 것 같지가 않아서 한마디 했습니다.
"아무리 개라도 보는 눈이 있는데 삼순이가 진돗개 눈에 차겠나?"
남편은 그 말에 이러는 겁니다.
"결혼은 다 눈에 뭐가 덮어씌어서 하는기라. 나를 봐라."
"뭐라꼬, 이 문디!"
은근히 사람 열바치게 하는 그 말에 코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더운 날 싸워봤자 땀만 더 날 것 같아 밖으로 나갔습니다. 아, 그랬더니만 향수 바르고 진돗개 집에 간 삼순이가 앞집 땅개랑 장난을 치며 놀고 있는 게 아닙니까. 키가 유난히 작은 땅개는 죽으라고 삼순이의 꼬리며 등에 올라타 핥고 있었습니다. 죽 쒀서 개 준 거죠, 뭐. 그날 이후 대문만 열리면 땅개는 우리 집에 놀러왔고, 삼순이도 틈만 나면 땅개네 집에 갔는데, 남편은 여전히 일요일마다 열심히 오징어 향수를 삼순이한테 발라 진돗개네 집에 밀어넣고 문을 닫고 오곤 했습니다. 여러 날들이 지난 어느 날 삼순이를 진돗개에게 데려다 주고 온 남편은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져서 말하더군요.
"봐라, 이제사 둘이 정이 든기라. 삼순이가 아예 나는 쳐다도 안 보고 그 집에 들어가는기라. 이제 그기가 신랑집이고 신랑집이 지집이다 이거제."
그러나 저는 알고 있었죠. 삼순이는 그 집 뒷담에 난 개구멍으로 빠져 나와 쪼르르 땅개에게 직행하나다는 것을. 그러나 차마 말을 못하겠더군요. 가을이 접어들자, 남편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삼순이가 새끼를 뱄거든요. 남편은 진돗개네 집 앞을 지날때마다 '흐흐흐' 웃으며, 승리의 브이자를 그려 보였습니다. 그러면 진돗개가 이러는 것 같다나요.
"내 새끼들을 부탁해용!"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이러는 것 같았습니다.
"미친놈."
남편은 삼순이가 유산이라도 할까봐 못 돌아다니게 꼭 묶어놓은 채 통닭이며 생선을 우리 먹을 것에서 뚝 떼어다 열심히 거둬 먹였고, 나날이 배가 불러가던 삼순이는 어느 날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끙끙거렸습니다. 너무나 괴로워하는 것 같아서 가축병원에 데려갔더니,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더군요. 돈까지 들여가며 수술 끝에 태어난 네마리의 삼순이 새끼들. 남편은 그날 우리집 앞을 서성거리는 땅개를 발로 걷어차며 소리쳤습니다.
"이놈아, 수술비 내놔, 이놈아. 우리 삼순이를 꼬셔서 새끼를 배게 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이놈아."
그리고는 진돗개네 집 앞을 지날 때면 꼭 한마디 했습니다.
"병신!"
그러나 남편에게 삼순이가 영 실망만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새끼를 낳고 부터는 누가 제 새끼 데려갈까봐 나뭇잎만 바스락거려도 짖어댔으니까요. 한번 목이 터지니까, 잘 짖대요. 작년 여름부터는 저녁마다 남편이 소릴 지르더군요.
"여보, 이젠 현관문 열어, 창문도 열고. 어이, 옆방 이씨도 문열고 자, 활짝 열고 자. 이제 우리 삼순이가 안 있나."
사람이 이렇게 간사해지나,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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