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민간요법이 사람잡네 - 한승섭(남,서울시 동작구 본동)
제 고향은 충남 온양의 외곽으로 과수원만 쭉 붙어 있는 조그만 마을입니다. 땅은 넓지만 집은 몇 채 없고, 이웃간에 담도 없이 지내는 사랑의 동네입니다. 그곳에서 아주 옛날 있었던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옛날, 진짜 뭘 잘 모르던 시절, 시골에서 있었던 엄청나고 어이없는 정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절대로 흉내내지 말라는 말씀을 먼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집엔 매일 새벽 5시가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동네 아저씨가 한 분 계셨습니다. 우리집 대청마루에 걸터앉아서 하는 말도 일년 365일 똑같습니다. 컴컴한 꼭두새벽에 남의 집 마루에 걸터앉아서 하시는 첫 말씀은 이랬습니다.
"흠, 흠, 자남...? 자는겨...?"
그 소리에 우리 식구들이 일어나 아침을 맞이 합니다. 새벽부터 술 한잔 하러 건너오시는 거예요.
"한잔 혀"
"흠, 흠. 식전부터 과헌디..."
그리고는 동네 한바퀴를 두루 살펴 보러 나갑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벽 5시에 아저씨가 오셨는데 그 걸음걸이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다리는 양쪽으로 쭉 벌리고 어기적어기적 걸었으며 얼굴은 벌레 씹은 표정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로더군요.
"치질이 아주 심해져서 걷지도 못하니... 워쩐디야."
"술을 그렇게 좋아하니 치질이 낫겄나... 쯧쯔."
아무튼 마을 사람들은 서로 걱정하면서 그 고약한 병을 고치는데 특효라고 저마다 한가지씩 민간요법을 내놓았습니다. 첫 번째 요법은 목에 띠없는 지렁이를 설탕과 함께 재워서 공복에 한 수저씩 먹으면 직빵이라는 순덕이 아버지 처방이었습니다. 그날부터 그 아저씨는 열일을 제쳐놓고 시궁창에서 살았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동네 또랑이란 또랑은 죄다 뒤집어졌고, 하수도 또한 모조리 파헤쳐져서 동네가 완전히 시궁창 동네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정성이 부족했는지 그 목에 띠없는 지렁이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비슷한 것 몇 마리를 정성스럽게 설탕에 재웠습니다. 그리고는 잡수셨죠. 그러나 효험이 있을리가 있남유. 엉터리 민간요법 덕에 동네만 시궁창 됐다니께유.
아저씬 두 번째 요법을 써야만 했습니다. 이번 민간요법 아이디어는 더 황당 했습니다. 그곳(항문)에 양잿물을 주사하면 감쪽같이 낫는다는 피난엄마의 처방이었습니다. 아저씨는 양잿물을 갖고 와서 제 어머니께 사정사정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간호사 교육을 받은 분이라 절대로 안된다고 거절하였습니다.
"양잿물은 독이여, 그걸 주사 논다구? 그건 안돼유."
그러나 아저씨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결국 어머니께서 지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주사를 집어 들면서 아저씨께 말씀하셨습니다.
"아저씨 죽으면 전 몰라유. 증말 몰라유."
"죽어도 지가 죽는 구먼유."
아저씨는 얘기하시며 궤타리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불보듯 뻔했습니다. 양잿물을 투입하는 순간, '윽' 하는 비명과 함께 양팔은 허공을 저었고, 두 다리는 사시나무 떨 듯했으며, 순식간에 벌어진 입에선 신음소리가 흘렀습니다. 그리고 두 눈은 초점을 흐린 채 흰자위가 점점 넓어만 갔습니다. 그 아저씨 엉덩이가 궁금하지유? 말두 마유, 가관이유 가관, 아니 가관두 아녀유. 그 아저씨 엉덩이께가 글쎄 시장바닥으로 변했다니께유. 그후로 아저씨는 목발로 허리 아래를 지탱하며 다녔습니다. 그래두 워쩐대유 새벽은 오는디... 지의 집에 와야쥬. 이 소리를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나 봐유.
"흠, 흠, 자남. 자는 겨?"
왠만하면 나아질 법도 한데 그놈의 치질은 더욱 악화만 되었습니다. 그날도 새벽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저녁 해는 뉘엿뉘엿 평온한 마을 뒷산으로 숨어가고 숨러가고 있었습니다. 그 저녁 무렵. 깔린 땅꺼미를 걷기라도 하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앰블런스 한 대가 아저씨 집앞에 섰습니다. 이유는 그 다음 요법이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세 번째 요법은(낚시를 환장하게 좋아하는 덕배삼촌 처방이어유) 요강에 물과 카바이트를 넣으면 부글부글 끓으며 연기가 발생합니다. 가스지요. 그 김을 쏘이면 치질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뚝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엉터리 처방이건만 아저씨는 또 실행에 옮겼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요강에 걸터앉았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무료했겠습니까? 아저씨는 하염없이 앉았다가 무심코 담배 한 대를 물었습니다. 담배를 다 피운 뒤 진짜 무심코 아저씨는 그놈의 담배 꽁초를 엉덩이 한쪽을 슬며시 들고 던져 넣었는데, 그 순간 쾅 하는 폭발소리와 함께 요강은 산산조각이 났고 아저씨는 넋놓고 있다가 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온양 그 산골에 앰블런스가 나타난거지요. 그 아저씨 엉덩이가 또 궁금하시지유? 물어보나 마나유. 아주 절단나 버렸데유. 온양 온천 장날에 어떤 이가 그러더구만유. 볼장 다 봤다고... 그 이후 한참 동안은 '흠, 흠, 자남.'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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