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저는 고향이 충남 예산군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승지인 삽다리입니다. 아주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죠. 제가 이곳에서 자라던 초등학교 4학년 때 있었던 사건을 좀 쓰려고 합니다.
하루는 일요일인데다 장날이고 해서 할머니와 함께 장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장터에는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모여 뭔가를 열심히 구경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사람들을 비집고 들여다보니, 원숭이도 있고, 이마로 못을 박는가 하면 입으로 불도 뿜어대고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맨 앞자리에 아주 눌러앉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후 약장수 아저씨가 입에 거품을 물고 약 선전을 하니까, 구경꾼들은 한명 두명 일어서기 시작했고, 약장수 아저씨는 잽사게 말했습니다.
"자. 지금부터 원숭이가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는데... 구경한번 해보세요. 사람 환장합니다."
"그게 진짜여 기가 막히구먼. 어쩌구... 저쩌구..."
사람들은 다들 다시 자리에 앉는 거였습니다. 호기심이 많은 저는 원숭이를 요리조리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엉덩이는 빨갛고 못생긴 게 허면 얼마나 허겄어' 하고, 혼자 공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자 약장수 아저씨는 원숭이에게 뭐라고 하더니, 모인 사람들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원숭이가 약이 많이 안 팔려서 기분이 나뻐가지고, 다음 장날에 하겠답니다."
사람들은 웅성 웅성 각자 갈길을 가고, 저도 아쉬움만 안은 채 집으로 오면서도 그 원숭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다시 보려면 5일을 또 기다려야 했습니다. 드디어 장날은 돌아왔고, 저는 고민했습니다. 왜냐구요? 학교를 따르자니 원숭이가 울고, 원숭이를 따르자니 학교가 우는게 아닙니까. 마침내 저는 결정을 했습니다. '하루만 땡땡이를 치자' 하고 말입니다. 저는 아침밥을 먹고 인사도 대충하고 집을 나와 책가방을 숲속에 숨겨놓고, 장터로 향했습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약장수는 오지 않고, 참 사람 화장허겠네유. 드디어 약장수는 오고 원숭이도 변함없이 등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도 맨 병만 깨고, 불만 뿜어 대더니 이 팽계 저 핑게 대기만 하고, 또 다음 장날로 미루고... 아무튼 이렇게 약장수 쫓아다닌 것이 아마 한 달은 넘을 것입니다. 결국은 원숭이의 솜씨는 보지도 못하고 단 한가지 배운 것은 석유를 마시고 불을 뿜어대는 것. 그것은 확실하게 배웠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집에 가서 저도 석유 먹고, 불이나 뿜기로 말입니다. 할머니 몰래 성냥과 석유를 훔쳐 가지고 좀 한적한 벌판에서 석유를 입에 가득 넣고 성냥을 켠 후, 석유를 확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기절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스스로 눈을 떳고, 웬 냄새는 그렇게 많이 나는지... 제가 왜 기절한 줄 아십니가? 바람을 등에 지고 해야 되는 것을 그 반대로 바람을 앞가슴으로 받은 채 불을 뿜었으니 결과야 뻔데가 뻔자 아닙니까. 그 불이 제 얼굴을 강타한 거죠. 겨우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오자. 할머니는 저를 한참 째려보시더니 묻습니다.
"니가 창우냐?"
"예."
"... 아닌데, 아녀, 니가 창우 아녀."
할머니는 뒷걸음을 치시며 당황한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막 부르시는 겁니다.
"영감, 영감."
"왜, 어디 불났남."
엉겁결에 나오신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저를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영감. 저 사람이 우리 창우라고 우기네유. 오티기(어떻게) 헌데유?"
할아버지도 저를 아래위로 훑어보시고는 세상에 저렇게 똑같은가 하시며 고개를 저으시는 겁니다. 아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제가 무서워지는 겁니다.
"할아버지, 내가 창우여."
저는 울면서 할아버지 품으로 뛰어들었고, 할아버지는 뭔가 감을 잡으셨는지 코를 몇 번 훌쩍 하시고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우리 장손이 맞긴 맞는디... 니 어디서 불장난 했는겨?"
할아버지는 역정을 내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끝까지 불장난 안 했다고 우겼습니다. 그러자 할아버니느 방으로 뛰어가시더니, 거울을 제 앞에 갖다 대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눈썹은 간다 온다 말 한마디 없이 다 어디로 가버렸고, 까까머리는 대충 새마을 지붕 개량 사업에 충실했고, 얼굴은 불에 그을려 가마잡잡 하고, 참 화상요란허데유. 저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 처음 원숭이 사건부터 쭉 실토를 하자. 얘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할머니는 어느새 검정 고무신으로 저를 향해 패대기를 칠 자세를 취하고 계시는 겁니다. 할머니는 육성회비가 아깝다 하시며 고무신짝으로 대리는디 진짜 정신 못 차리것데유. 좌우지간 죽지 않을 만큼 뒈지게 맞았습니다. 생전 처음 맞았거든요. 이편지를 쓰다보니 정말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이 간절히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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