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하나
추억이라는 이름의 웃음여행
나 지금 떨고 있니?
저는 목욕탕의 파수꾼, 목욕탕의 밀맨, 일명 '때밀이'라고 하지요. 지금부터 저는 목욕탕에 때 밀러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적어볼까 합니다. 이종환, 최유라씨. 때 밀러 온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언지 아세요? 그것은 때가 무자비하게 많이 나온다는 겁니다. 자주 오는 사람들은 때도 안 밀고, 꼭 한두 달에 한 번씩 오는 사람들이 미는데 정말 힘들데요. 때밀이도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밀기 싫은 사람이 있다는거 믿어지십니까. 덩치가 황소만한 사람이 와서 때를 밀어달라고 합니다.
"아저씨 때 좀 밀어주세요"
이런 손님들은 탁 드러누우면 정말 밀기 싫습니다. 하지만 손님인데 어쩝니까. 열심히 밀어야죠, 저는 밀면서 손님께 묻습니다.
"아저씨 시원하십니까?"
"시원하긴 뭐가 시원해, 석달 열흘 굶었어. 왜 이렇게 힘이 없어."
참 환장하겠네. 내가 힘이 없는 건가. 지가 가죽이 두꺼운거지. 살만 돼지마냥 뒤룩뒤룩 쪄갖고 죽을둥 살둥 힘을 다해 밀었더니 맥빠져 못 밀겠네. 이종환, 최유라씨. 수줍은 많이 타는 삶은 또 어떤지 아세요? 탁자에 눕자마자 바가지로 시청앞 분수대를 가리는데 참 가관이더라구요. 그래서 한마디 했죠.
"바가지 속에 뭐 있어요? 왜 이렇게 감춰요? 아저씨나 나나 똑같이 벗고 있는 사람끼리..., 아저씨, 바가지 치우세요. 그래야 때밀기가 쉽죠."
그러자 그 아저씨가 한다는 말이 뭔지 아세요.
"바가지 안 치우고 그냥 밀면 안 될까요."
"치우기 싫으면 아저씨 마음대로 하세요. 내 때밀이 오년 만에 바가지로 가리고 왔다갔다 하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바가지로 시청앞 분수대를 가리고 때밀어 달라는 사람은 생전 처음이네. 아무튼 오래하고 볼일이야."
또 어떤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탈의실에서의 일입니다.
"야 때밀이. 이리 와봐."
반말로 부르더라고요. 엄청 기분 나쁘데요. 그래도 어떻합니까. 손님인데...부르는 사람 앞으로 갔지요. 갔더니 웬 소도둑놈 처럼 생긴 사람이 딱 서 있더라구요.
"손님. 절 부르셨습니까?"
"야! 때밀이, 부르면 빨리 오지 왜 이제와!"
"손님, 왜 자꾸 반말을 하십니까. 저도 인격이 있는데..."
"어쭈, 때밀이 주제에 손님한테 대들어!"
이 말을 듣는 순간 더 이상은 못 참겠더라구요, 그래서 들고 있던 바가지로 냅다 뒤통수를 쳤지요, 치고 나니깐 속은 시원하데요. 근데 점점 걱정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얼굴을 올려다보니까, 손님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더니 소리치는 겁니다.
"너! 잠깐만 기다려. 나 웃통 좀 벗고 보자."
"벗으려면 벗어봐라. 나는 이미 벗고 있다."
아! 근데 웃통을 탁 벗는 순간, 가슴에 용문신이 그것도 쌍룡이 보이는데, 장난이 아니데요. '아, 바가지로 한대 때리고 나는 죽는구나'하고 생각하니까 온몸이 떨리는데, 이대로 있다간 않되겠다 싶어 빌기 시작했죠.
"손님, 제가 사과하는 의미로 때를 밀어드릴 테니깐 화 푸시죠?"
"됐어. 너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사우나나 하고 갈 거니까 저리 비켜!"
문신한 사람이 탕에 들어가니까 목욕하는 사람들이 살살 피하는데, 온탕에 들어가면 온탕에 있는 사람들이 나오고, 냉탕에 들어가면 냉탕에 있는 사람들이 나오고, 사우나실에 들어가면 사우나실에 있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건 완전히 공포의 대상이더라구요. 사람들이 목욕하다 말고, 하나, 둘..., 밖으로 나가는데 금방 다 나가고 우리 둘만 남게 되었죠. 근데 왜 그렇게 무섭고 떨리는지, 내평생 떨 걸 한 번에 다 떤 것 같으네요. 고개도 못 들고 바닥만 쳐다보고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체구의 청년이 들어오더군요.
"아저씨 때 좀 밀어주세요."
제게 때를 밀어달라는 그 청년의 그 말이 왜 그렇게 고맙던지.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니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놓이데요. 그래서 어깨를 쫙 펴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했죠.
"손님 엎드리시지요."
그런데 이게 왠일! 그 청년의 등에는 뱀이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가 보이는데 쌍룡 피하려다가 쌍뱀 만나니까 오줌이 다 찔금 나오는데, 쌍뱀이 묻더군요.
"아저씨, 쌍룡 못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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