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와사등의 불빛처럼
-고 김광균 선생님께
지병으로 말문이 닫혔어도
마음 문은 열려있어
문병을 갈 때마다
그토록
좋아하시던 등불 같은 미소로
환히 반겨 주시던 선생님
시를 너무 사랑하시기에
오히려 남보다 적게 쓰시며
가슴에 시를 개켜 두신 선생님은
"시를 쓰지 않더라도
항상 시의 불꽃을 지니고 살라"고
제게 일러주셨습니다.
흰 눈을 좋아하셔서
흰 눈이 내리던 날
성스런 사제의 품에 안겨
흰 눈처럼 고요히
세상을 하직하신 선생님
"저는 옛날부터
산문은 피하고 살아왔습니다.
산문을 쓰는 동안 시가 새어 나가
시의 금고가 바닥날 듯한 불안때문입니다."
선생님이 지상에 두고 가신
아름답고도 쓸쓸한 시편들과
제게 주신 편지들을 다시 읽노라면
그리움의 눈물이 하얀 눈꽃으로
제 마음의 창에 얼어붙습니다.
"저는 나이 탓도 있습니다만
일생에서 시를 뺀다면
참 형편없는 인간이라 생각합니다.
시작에 겁이 나시는가 본데
주저하지 마시고 용기를 내어
새로운 시를 써주십시오."
선생님의 기대와 달리
저는 아직도 시의 나무에
좋은 열매 하나 못 달았지만
항상 격려해 주시던 그 목소리는
와사등의 불빛처럼 은은하게
제 영혼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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