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 기도 시
슬픈 기도
- `삼풍` 사고의 희생자들을 기억하며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잘못 지어 무너진 건물에 깔려
처참히 목숨을 잃었습니다
매일 새로운 시신을 찾아냈다는
차디찬 죽음의 뉴스를 들어야 하는
이 우울한 여름의 슬픈 기도는
빗물처럼 흐르는 눈물일 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위로가 될 수 없는 절망의 한숨일 뿐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잊어서도 아니 될
이 엄청난 희생과 슬픔은
멈추지 않는 원망과 분노의 파도로
밤에도 우리를 덮쳐 와 휴식을 잃습니다
앞으로의 교훈으로 삼기엔
너무 깊고 큰 이 아픔은
흉하게 무너져 내린 콘크리트 더미보다
더 괴롭고 무겁게 우리를 내리누릅니다
어둠에서 빠져나온 기적의 사람들을 반기느라
우리는 잠시 슬픔을 잊기도 했지만
아직도 따뜻한 웃음이 눈에 선한
우리의 수많은 그리운 얼굴
사랑스런 아들, 딸, 언니, 오빠
해와 달처럼 집 안을 비춰 주던
소중한 엄마, 아빠, 다정한 연인들
본래의 모습대로 다시
돌려 받을 기적은 없는 것입니까?
꿈에라도 보고 싶은 그리운 이들
흔적이라도 만지고 싶어 찾아 헤매는
가족들의 애타는 기다림
목쉰 통곡소리를 들으십니까?
정말 잘못했다고
이젠 잘해 보겠다고
항상 늦게야 가슴을 치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기소서
돌덩이처럼 무디어진 우리의 양심
오만한 이기심과 눈먼 욕심
서두르지 못한 게으름과
깨어 있지 못한 안일함으로
가까운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부친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기엔
너무 염치가 없으니 용서하지 마소서
차라리 두려운 침묵으로 벌하여 주소서
괴롭게 신음하다 죽어 갔을 영혼들
부디 밝은 곳에 편히 눕게 해주시고
상처 받은 이들 낫게 하시며
평생 뽑히지 않을 슬픔의 못이 박힌
유족들의 마음에 함께하소서
힘든 중에서 생업을 포기하고
구조와 봉사로 땀 흘렸던
사랑의 이웃들을 어여삐 보시고
우리가 서로의 지친 손 마주잡으며
슬픔을 이겨낼 힘과 용기를 주소서
무고한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살아 남은 이들은 이제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다시 책임지는 법을 배우며
이 아픔을 조금씩 견뎌내게 하소서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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