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가을엔 바람도 하늘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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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소리가 하루 종일 내 마음을 흔들던 날. 코스모스와 국화가 없으면 가을은 얼마나 쓸쓸할까. 이 가을에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길들여야지. 아름다운 음악을 듣거나 좋은 책을 읽는 즐거움도 행복한 것이지만 홀로 듣는 음악. 홀로 읽는 책을 좋아하는 것 못지않게 함께 일하는 이들의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어야겠다. 때로는 나늘 힘들게 하고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듯한 사람들의 눈빛과 표정에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실수나 잘못을.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세심하게 읽어낼 수 있는 지혜를 지녀야겠다. 나이 들수록 온유와 겸손이 어렵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창 밖의 나무들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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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선 돌이나 쇠붙이에서 느낄 수 없는 생명과 정서를 느낀다. 나무향기를 맡고 싶다. 나무향기를 내는 벗을 갖고 싶다. 나무향기로 남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정목일님의 <나무향기>라는 수필을 읽은 날. 나는 뜻밖에도 언니가 보내 준 향나무 원목 한 토막을 선물로 받았다. `이건 향나무 조각인데 책상에 두고 상본이나 십자고상 같은 것을 올려 놓으면 어떨까? 시상이 떠오를지도 모르지` 하는 메모와 함께. 그러고 보니 내 방 안에는 향나무 묵주, 향나무 필통, 향나무 연필들로 이미 향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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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가 아프다고 칭얼대는 모습은 밉지 않은데 어른이 되어 자기의 아픔을 이리저리 어떤 모양으로든지 보채는 모습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아픔은 숨기고 오히려 남을 걱정하는 이들의 순한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고 감동이 되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너무 자기 걱정만 앞세우고 자기 아픔에만 빠져 남을 돌보는 넓고 큰 마음을 잊고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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