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함께 사는 삶
어울려서 산다 - 정일문
24분 만에 와야 할 차가 48분 만에 나타났다. 승객들은 끊임없이 이리 밀리고 저리 조여야만 했다 역에 닿을 때마다 비명이 일더니 구로역에서는 아우성으로 변했다.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고 이어서 누군가가 어린이를 보호하자고 소리쳤다. 그러자 신통하게도 안쪽 의자에 앉아 있던 젊은이들이 일어났다. 대신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가 앉혀졌고 어른들의 다리 사이에서 울고 있던 아이가 빠져 나왔다. 그러나 즐거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차가 관악역에서 특급 열차를 먼저 보내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그렇잖아도 늦은 차가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승객들은 잔뜩 떫은 감 베어물은 얼굴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옆의 술기운이 눈가에 게슴츠레 나타난 젊은이가 앞으로나선 것은. 그는 식 웃으면서 말했다.
"승객 여러분, 우리 조금만 더 기분 좋게 참읍시다."
무슨 또 술주정인가, 승객들은 두리번거렸다. 그의 동행인 듯한 그러나 그보다도 더 취해서 흔들리는 젊은이가 그를 제지하려고 하였으나 그의 열선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여러분, 우리 나라의 정치는 날로 밝아지고 잇습니다. 우리도 마음을 밝게 가집시다. 옆 사람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신문도 서로 바꿔 보면서 즐겁게 기다리십시다요.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기다려 왔습니까."
그러자 저 안쪽에서 누군가가 "옳소" 하고 찬성을 표시했다. 여기저기서 키들키들 웃음이 터졌다. 짜증으로 뒤범벅이 되었던 차안에 어떤 바람 같은 것이 지나는 느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노래 하나 하시요" 라고 누군가가 받아서 말했다. "좋지요" 라고 젊은이가 응하자 여러 군데서 박수가 나왔다. 실로 놀라운 발전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도 어려운 누가 감히 낯선 사람들 앞에서 정치가 어떻다고 말하며 나설 수가 있었는가. 그리고 누가 감히 옳다고 화답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그저 하염없이 홀로 타고 홀로 내리며 홀로 생각할 뿐이었지 않았는가.
"그럼 제가 노래를 하겠습니다. 그 대신 여러분, 길을 가실 때 구세군의 종소리를 들으시거나 불우한 이웃을 돕자는 모금함을 보시거든 제 노래를 생각하시어 그냥 지나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 나왔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젖는 배사공..." 끝절에 이르러서는 안쪽의 누군가가 그의 노래를 따라서 불렀다.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수원시 화서동 거주)
어떤 부자 - 강길웅
휠체어마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베드로 형제가 새벽 일찍 혼자 화장싱에 가다가 넘어지는 통에 엉덩이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러자 아들 분도가 매일 찾아와서 성화를 대었다.
"아브디 언데 와?"
벙어리는 아니지만 분도는 말을 잘 못하며 또 알고 있는 단어도 몇 개 되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좀 퉁명스럽게 물었다.
"뭣 땜시로 매일 찾아와서 성가시게 구느냐?"
내심으로는 기특해 하면서도 너이에 걸맞지 않게 바보스런 아들을 보고 짐짓 한 번 소리쳐 본 것이었다.
"아브디 없으니까 혼다 무더워서 못 다겠어."
나이가 쉰이 다된 늙은 아들이 아버지 없이 혼자 무서워서 못 자겠다고하자 아버지 눈에 금방 이슬이 맺혔다. 분도는 베드로 형제의 양아들이다. 1949년생이라 나이는 쉰이 다되었지만 지능과 정신 연령은 세 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양아버지인 베드로 형제는 올해 일흔일곱에 앞 못 보는 봉사이며 두 다리는 절각 되었고 또 손가락이 없어 거동이 아주 불편한 분이다. 그런데 두부자가 서로 잘살고 있다. 본래 베드로 형제는 열두 살에 나병을 얻어 열네 살에 소록도에 입원을 했으니 그동안 소록도에서 산 햇수만도 63년이 된다. 경상도 어느 시골에서 오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어느 날 복숭아뼈 부근에 반점 같은 것이 생기면서 부기가 있었는데 아무리 눌러도 아프지 않았다. 그리고 열세 살 때는 눈썹이 몽땅 빠지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베드로 소년은 동네의 눈총을 받았으며 1년 이상 집 안의 골방에 갇혀 지냈다.
결국 베드로 소년은 관에 신고되어 다른 환자들과 함께 트럭으로 열차로 그리고 나중에는 부산에서 배를 타고 소록도에 입원했는데 그때 함께 입원한 환자들이 삼백 명쯤 되었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가 소년 베드로를 전송하면서 "너는 오늘부터 내 자식이 아니다. 그리고 나도 네 아비가 아니다"라고 했단다. 그후로 베드로 소년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으며 또 한 가족을 한 번도 만난 적도 없었다.
베드로는 보통학교(초등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했고 말도 잘 들어서 병원 직원들 뿐만 아니라 주의 여러 어른들로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결혼도 하여 가정을 꾸렸으나 슬하에 자식이 없자 다른 어린 환자들을 양자로 삼아 그들을 보살펴 주곤 했다. 그러나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러 양자를 기르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 첫 번째 양자가 마약에 빠져 결국 자살했는가 하면 두 번째 양자도 그 행실이 좋지 못하다가 일찍 병사했고, 세 번째도 병사했으며, 네 번째는 여식이었는데 처녀 때 행방불명이 된 채 지금껏 소식이 없다. 그들 모두가 너무 일찍 병을 얻은 충격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베드로 형제를 비난하는 자들도 없지 않았다. 발 없고 손 없는 어른이 아이들을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베드로 형제가 마음으로 입은 상처도 상당했다. 자신은 부모와 형제로부터 버림을 받았는데 결국 자신이 기른 양자들로부터도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시는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않고 내 사는 대로만 살겠다고 다짐했으나 그러나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것은 더 큰 지옥이었다. 바로 그때 나타난 것이 '분도'였다 분도는 나병에다가 말도 그저 '어, 어' 밖에 못하는 일종의 벙어리였으며 지능은 아주 낮은데 그때 당시 나이는 서른이 넘었다. 사무실에서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해서 보호자를 찾은 것이 결국 베드로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제 눈도 멀고 할멈도 없는 데다가 손발이 성치 못한 불구의 몸으로 도저히 분도를 키울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주위에서 배드로 영감만이 분도를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하여 나중에는 흔쾌히 양자로 받아들였는데 이래서 분도가 베드로 형제의 다섯 번째 양자가 되었다. 베드로 형제는 남의 아이들을 키워 봤기 때문에 사람 다루는 기술을 나름대로 터득하고 있었다. 분도의 그 쓰레기 같은 소지품들을 다 태워 버리고 일체 새것으로 바꿔 주었으며 "바보도 사람이다!" 라는 인격에 대한 존경심으로 말 못하는 그를 달래고 얼러서 사람 노릇을 하게 만들었다.
분도는 다른 어린아이들이 그렇듯이 뭘 갖는 것을 좋아했다. 이를테면 볼 줄도 모르면서 시계를 차는 것을 원했으며, 들을 줄도 모르면서 카세트 녹음기를 달라고 졸라댔고, 그리고 자전거를 원해서 자전거를 사주기도 했다. 시계는 여전히 볼 줄을 모르지만 그러나 다른 것들은 제법 듣고 다루게 되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베드로 형제가 참사랑을 쏟자 분도 쪽에서도 참사랑이 솟구치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 소중한 줄을 깨닫게 되어 말도 제법 배우고 사람 노릇을 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베드로 형제의 손발과 눈귀가 되어 하나부터 열까지 지성으로 아버지를 받드는 것이었다. 이걸 보고 사람들이 감탄을 했다. 분도가 모자라기는 한참 모자라지만 그러나 심성은 참으로 고운 사람이다. 아버지가 아파서 미사에 못 나오면 자기도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나한테 와서 아버지가 아프다고 일러준다. 산에서 밤을 주워다가 아버지께 드리며 아버지 먹으라고 졸라댈 때는 눈물을 자아내기도 한다.
세상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작은 자를 큰 사람으로 보는 눈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는 마치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세상으로부터 오는 은혜가 다른 것이다. 우리도 진정 작은 자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자 안에 우리의 미래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분도 형제가 그것을 보여 주고 있다. (소록도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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