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함께 사는 삶
선행이 - 진성희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해서 마련한 비행기 삯으로 우리 부부는 무작정 유학을 왔다. 빈손으로 시작했던 신혼 생활도 벌써 2년. 누구 하나 아는 이 없는 곳에서 아내는 열여섯 시간의 진통 끝에 첫아기를 낳았고, 아이 키울 걱정은 뒤로한 채 우리는 새 생명의 신비로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아기를 데려온 바로 그날 저녁 멀리서부터 사이렌 소리가 올려 오더니 경찰차 한 대가 우리 집 앞에 멈춰 섰다. 깜짝 놀라 문을 여니 키가 큰 흑인 경찰과 아기를 낳을 때 곁에서 도와 주었던 간호사가 급히 뛰어들어왔다. 간호사는 가쁘게 숨을 몰아 쉬며 이렇게 말했다.
"방금 아기의 황달 측정 결과가 나왔는데, 수치가 너무 높아 위험하니 호놀루루 시내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아무리 아껴 가며 생활해도 모자라는 가난한 형편이었기에, 우리 집엔 전화기 한 대 없었다. 이로 인해 병원에서는 달리 연락처를 구하지 못하고, 주소만 가지고 경찰의 도움으로 간호사와 함께 우리를 찾아 나선 것이었다. 2차건인 해변 도로를 따라 호놀루루 시내까지는 거의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차 안에서 조급해 하고 불안해 하는 아내에게 옆자리에 있던 간호사가 위로의 말을 했다.
"교통이 막히면 해병대 헬기를 불러 아기를 옮기기로 연락해 두었으니 안심하세요."
그러나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에 차들이 서둘러 길가로 비켜서 준 덕분에 우리는 훨씬 빨리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아기는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아내를 겨우 달래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불빛 찬란한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나는 이역 만리 낯선 타국에서 가진 것 하나 없는 우리에게 병원비는 어떻게 갚을 것인지 물어 보지도 않은 채, 작은 생명 하나를 위해 정성을 다해 준 수많은 사람들의 인정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들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아이의 노랗게 물든 호아달기는 이틀 후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건강한 아기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아기의 이름을 '선행'이라 지었다. 우리도 이웃에게 선을 행하자는 의미에서.
(미국 하와이 거주)
이 땅의 가족들 - 작자 미상
지난 7월 11일자 동아일보 17면에는 재미있는 독자 사진이 한 장 시려 있었지요. 경남 산청군 신안면 하정리 유병택 씨가 찍은 것인데 새끼 돼지가 주인을 졸졸 따라서 시장길을 가는 모습입니다. 사진 설명은 이렇습니다. 어미 돼지가 출산을 하다 죽어 버리자 새끼 돼지를 우유와 개 젖으로 키웠는데 이 녀석은 저희 안주인이 시장을 갈 때나 외출을 할 때나 귀찮을 정도로 따라다녀 주위 사람들의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인간시대)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는 아내를 잃은 한 농부가공교롭게도 어미 소가 송아지를 낳다가 죽자 송아지한테 우유를 먹이며 사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지요. 그런데 그 송아지는 이 농부의 죽은 아내가 환생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농부를 끔찍이 따릅니다. 노을 지는 둑길에서 농부의 어깨에 두 발을 턱 걸친 채 람께 서녘을 바라보고 있던 송아지와 농부의 화면을 감동 깊게 보신 분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축생들도 사람과 정이 들면 이렇게 따뜻한 교감이 흐르는데 우리 사람들은 너무 잔인하다 싶게 대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 아닌지요? 이제 산과 바다와 강으로 떠나는 휴가 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날아다니는 새와 뛰어다니는 짐승과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들을 대할 때 그들도 이 땅의 한 가족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특히 새끼를 배었거나 어릴 경우에는 더더군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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