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잊을 수 없는 사람
가판대 아저씨 - 진형준
지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을 돕는 마음이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
- 알버트 슈바이처
월요일 아침은 항상 허전하다. 매일 아침, 별 신통한 기사가 없는 줄 알면서도 부리나케 펼쳐 보는 신문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 허전함을 버스 정류장에 있는 가두 판매대에서, 월요일 아침에도 쉬지 않고 발간되는 스포츠 신문을 사는 것으로 메우곤 한다. 꾀죄죄한 얼굴에 꾀죄죄한 옷, 거기다 꾀죄죄한 손으로 건네주는 가판대 아저씨의 인상이, 그 꾀죄죄함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따사로워보임은 웬일일까? 하기야 하찮은 130원짜리 신문 한 장을 사면서, 사는 사람의 송구스러울 정도로 아저씨로부터 꼬박꼬박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기는 했었다. 처음에는 속으로 '신문 한 부 가지고 뭘 그러시나?' 정도로 생각하며 무심코 그 인사를 넘겨 버렸었다. 그러나 매번 그런 인사를 받게 되자 요즈음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줄곧 아저씨의 행동을 살펴볼 정도로 관심이 깊어졌다.
가판대 옆에 자그마한 의자가 있는데도 아저씨는 거기에 앉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 신문, 성냥, 주간지, 껌, 사탕 몇 종류 등 그냥 하찮게 펼쳐 놓은 것 같은 물건들을 무슨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이 수시로 털고 닦고 하는 것이다. 그 물건들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저 아저씨 하루 매상은 얼마나 될까, 한 달 수입은 얼마나 될까 식으로 금전적인 문제만 궁금해 하던 내가 부끄러워지곤 한다. 그날 아침에도 평상시와 다름없이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아저씨의 부지런한 손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도착한 버스에서 웬 아줌마가 내리더니 그대로 구토를 하고는, 기진한 듯 가로수에 기대어 쓰러져 버렸다.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 행인들은 그 광경에도 그냥 무심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먼지털이를 가판대 위에 던지더니 그 아줌마에게 다가가 등을 쓸어 주며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아마 병원에라도 데려다 달라고 했는지 아저씨는 그 아줌마를 들쳐 엎고는 가판대를 팽개쳐 둔 채 성큼성큼 뛰어가기 시작했다. 혀를 끌끌 차면서. 그래, 저게 사는 거야. 그 뛰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하찮은 내 일상이 자꾸 부끄러워짐을 어쩔 수 없었다. (홍익대 불문과 교수)
앉은뱅이 책상 앞에서 - 이수광
그 무렵 우리가 세들어 살던 옆방엔 공단의 여공들이 여러 명 자취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때때로 작업을 마치고 주인집 옥상에 올라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대개는 고향 얘기였지만 그녀들은 열악한 작업 현장의 얘기라든지 밀린 봉급 얘기, 야근을 할 때 졸지 말라고 바늘로 여공들을 찌르는 작업 반장의 얘기를 하곤 했다. 그 여공들 중에 시골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늘 단발머리를 하고 낯빛은 창백했다. 그러나 병적이리만치 창백한 얼굴 모습과는 딴판으로 언제나 쾌활하고 마음 씀씀이가 착했다. 다른 여공들과는 달리 한가할 때는 우리들의 작업복을 빨아 주기도 하고 남자들끼리 밥해 먹는 것이 딱해 보였는지 손수 밥을 지어 주거나 밑반찬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 소녀가 어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다고 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소녀는 어머니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것으로는 모자라는, 오빠의 학비도 보태고 있는 눈치였다. 그녀의 오빠는 의과 대학생이어서 졸업을 하면 의사가 된다고 했다. 그 소녀는 오빠가 대학교를 졸업해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되어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하루의 일과가 조금도 피로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앓기 시작한 것은 그해 장마가 한창일 때였다. 우리는 그녀가 앓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그녀의 얼굴이 퉁퉁 부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알았다. 그녀가 자기의 몸이 아픈 것을 숨기고 있었던 탓이었다. 어느 일요일, 우리는 옆방의 여공들과 함께 돈을 모아서 과일 꾸러미를 사들고 그녀의 병문안을 갔다. 뜻밖에 그녀의 병세는 위중했다. 얼굴이며 온몸이 퉁퉁 무어 있었을 뿐 아니라 말도 제대로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가 병문안 온 것을 몹시 고마워하며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우리가 억지로 눕게 했는데 그래도 그녀는 미소를 잃지 않으며 하루 빨리 일어나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병실에는 시골에서 올라온 대학생인 그녀의 오빠와 어머니가 계셨다.
그녀가 잠이 들자 그녀의 오빠는 그녀가 자기의 학비를 보태기 위해서 라면 두 개로 하루의 끼니를 때운 적도 있다고 했다. 지난 겨울 모처럼 동생이 자취하는 방을 찾은 그는 한눈에 그녀가 영양실조에 걸린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걸 알면서도 그 흔한 링거 주사 한 번을 뇌주지 못하고 게란 두 줄을 사서 놓고 나올 때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고 울먹였다. 그해 여름이 가기 전에 그녀는 꽃다운 나이로 고달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가 걸린 병은 영양실조 아니라 납중독이었다. 그녀가 다니던 공장은 납을 많이 취급하는데 공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죽은 다음날, 태양이 중천에 떠서 이글거리고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웠던 그날, 그녀의 오빠가 그녀의 셋방을 정리하기 위해 왔다. 그녀는 소지품도 단출했다. 앉은뱅이 책상 한 개와 몇 권의 책, 비키니 옷장 하나가 그녀의 소유품 전부였다.
우리는 그녀의 오빠가 짐 정리하는 것을 돕기 위해 그 방에 갔는데 주인 없는 앉은뱅이 책상 앞에는 '바르게 살자'라는 글귀가 서툴게 쓰여진 흰 종이가 초라하게 붙어 있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다섯 글자를 읽는 순간 나는 갑자기 가슴이 찡하게 울렸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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