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명작이 탄생되기까지
인생이 값지다고 하는 것은 장래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때때로 간사하고 연약하여 값진 인생의 가치를 망각하고 살아갈 때가 종종 있습니다.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가 스물여덟 살 때에 사형을 선고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영하 50 도나 되는 추운 겨울날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형장에는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한 기둥에 세 사람씩을 묶었는데 그는 세 번째 기둥의 가운데에 묶여졌습니다. 사형집행 예정시간을 생각하면서 시계를 보니 자신이 이 땅 위에 살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이 5분 남아 있었습니다. 28 년간을 살아왔지만 단 5분이 이렇게 금쪽같이 생각되어지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단 5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어디에다 쓸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형장에 같이 끌려 온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데 2분을 쓰고 오늘까지 살아온 생활과 생각을 정리하는 데 2분을 쓰기로 했습니다. 남은 1분은 자연을 한번 둘러보는 데 쓰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눈물이 고인 눈으로 옆에 있는 두 사람에게 최후의 키스를 하였고, 이제 자신에 대해 생각하려는데 문득 3분 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앞이 캄캄해지고 아찔해졌습니다. 28 년이라는 세월이 너무나 헛되게 느껴졌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 절실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탄환을 총에 장전하는 소리가 났고,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한 병사가 흰 손수건을 흔들면서 달려왔습니다. 황제의 특사령을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곳에서 풀려 나와 시간을 금쪽같이 아끼며 최선을 다해 살면서 불후의 명작을 남겼습니다.
부모의 사랑
한 청년이 집을 떠났습니다. 농사 짓는 일이 고달프고 아버지의 간섭이 싫고 어머니의 잔소리가 짜증나 고향을 떠나 서울로 향했습니다. 서울에 와 보니 모든 것이 신비롭기만 했습니다. 높은 건물과 물결치는 듯한 자동차의 행렬, 휘황찬란한 불빛, 잘 입고 늘씬한 서울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반겨 주는 듯하였습니다. '고향을 떠나오길 잘했어, 서울은 참 멋있는 곳이야!' 청년은 의기양양하게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가지고 온 돈을 마구 썼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돈이 떨어지자 먹을 곳, 잘 곳, 쉴 곳이 없어지고 배고프고 춥고 초라해졌습니다. 숨막힐 것 같은 외로움과 불안이 엄습해 왔습니다. '아, 서울이란 살 곳이 못 되는구나. 고향으로 돌아가야지. 고향으로 돌아가면 부모님이 계시고 친구와 산천이...' 부모님과 친구와 산천이 한꺼번에 그리워졌습니다. 어서 빨리 그들 곁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이 결코 그를 용서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버님, 어머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의 잘못이 너무 커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만일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면 집앞의 감나무에 하얀 수건 한 장을 걸어 두십시오. 제가 기차를 타고 지나가다 그것을 보게 되면 부모님이 용서해 주시는 것으로 알고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기차가 고향에 가까워 오자 청년의 가슴은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얀 수건 한 장이 감나무에 걸려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집앞 감나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감나무에는 하얀 수건뿐 아니라 하얀 옷가지와 솜, 종이 등 집안에 있는 모든 하얀 물건들이 감나무를 온통 뒤덮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내려갈 뿐이고 올라오는 법이 없다. 즉 사랑이란 내리사랑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자식의 부모에 대한 사랑을 능가한다. (C. A. 엘베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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