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시련을 딛고
두 손 아닌 두 발이 그린 그림 - 오순이
걸음을 배우고 앞뒤 없이 돌아 다닐 세 살 무렵 나는 집 앞 철길을 겁 없이 혼자 건너다 사고를 당해 그만 두 팔을 잃었다. 사고 후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의사들이 하는 말은 한결같았다.
"가망이 없습니다. 다른 병원을 찾아가십시오."
어머니는 의식을 잃은 나를 업고 뛰어다니다가 겨우 도립병원에 나를 눕힐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기적적으로 소생의 울음을 터뜨렸다. 병원 생활 후에는 장장 3년이란 시간을 어머니 등의 땀 냄새를 맡으며 업혀 다녀야 했다. 내 치료비 때문에 농사를 짓던 우리 집은 다른 곳으로 옮겨 다녀야 할 정도였다. 병원을 다닌 지 2년이 되면서, 그러니까 다섯 살이 되면서 나는 손이 하던 모든 행동을 발가락으로 대신하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학교 생활을 위해 발가락으로 글을 쓰는 것이었다. 양팔이 없는 상태의 다섯 살짜리 아이의 걸음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뒤뚱거리다가는 넘어지고 다시 넘어지고 해서 얼굴엔 피멍이 사라질 나이 없었다. 발에도 벌건 물집이 잡혀 식구들은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아직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도 모르는 꼬마에게 눈물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던 해였다. 같이 놀던 친구들은 모두 학교에 가고 없어 텅 빈 골목길을 바라보면서, 집안 사정으로 학교에 못 간 나는 조금씩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멀지 않은 학교 운동장에서 들리는 호각 소리, 아이들의 구령 소리, 마냥 뛰어가고 싶기만 하여 답답하던 그때의 심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대신 나는 집에서 언니들이 가르쳐 주는 수업으로 만족해야 했다. 때때로 교실 근처에 다가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친구가 어느새 알아보고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고, 나도 친구 옆에 앉아 공부해 보는 것이 간절한 소망이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볼 수 없었던지, 어느 날은 큰언니가 학교로 찾아가 다음해에는 입학할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갖고 왔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남보다 1년 늦게 나는 처음으로 학교 생활이란 걸 시작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학교 생활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친구들의 눈초리가 의식되고, 내 발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음이 느껴질 때마다 내가 일반일과 다르다는 것이 피부에 와 닿았다.
몇 년 간 집에서 익힌 발의 행동이 글씨는 물론이고, 웬만한 소지품을 다룰 수 있을 정도였는데 그런 눈초리를 대할 때면 나는 어딘가로 숨고만 싶었다. 그때 선생님이 좋은 친구를 사귀게 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점차 내가 아픈 마음들을 털어 내던 4학년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내게 미술 공부를 권유하셨다. 미술 시간에 주위의 시골 풍경을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마음껏 그렸는데 선생님이 그 그림을 보신 것이다. 그때부터 내게 미술은 떨어질 수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림에 대한 호기심은 더해 가기만 했고, 등교할 때부터 미술 도구가 첫 번째 준비물이 되었다. 동양화가 무엇이며, 사군자의 기법이 어떤 것인지도 배웠다.
그러나 처음 잡는 붓은 발가락 사이를 빠져 나가기 일쑤였고, 발놀림도 둔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맹목적인 것 같지만 신체적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수천 수만 번의 반복 훈련이 필요했다. 집--동양화--학교만이 내 생활이 되면서 시간은 흘러갔다. 그림이 안될 때는 허전하고 슬펐지만, 그 반대일 때는 하교길이 그렇게 신날 수 없었다. 또한 처음으로 창조란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것임을 깨달았다. 이런 생활 끝에 눈물 바다와 환희의 초등학교 졸업을 마치고 "너를 끝까지 지켜보겠다" 고 하시던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뒤로했다. 그리고는 화실이 가깝던 시내 중학교와는 정반대인, 집에서 50분이나 걸리는 제일여중에 입학했다. 처음 만나는 친구들로부터 또 따가운 시선들을 느껴야 했지만 급우들은 금방 내 손들이 되어 주었다. 나는 한결 성격도 밝아지고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림 연습은 더 많이 했다. 전시회를 찾아 다니다 보니 나도 섬세한 창작을 하고 싶다는 욕심과 의욕이 생겼다. 한편으론 체육 시간이 끝나고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 친구들의 얼굴이 그렇게도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제 나는 여고 시절의 막바지에 와 있다. 주위의 도움으로 여러 번 상도 탔고, 대학 진학의 길도 열렸다. 새로운 대학 생활에 대한 불안이 없지 않으나 이 과정을 이겨 내면 나도 떳떳이 사회의 한 대열에 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마산 제일여고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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