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3 시련을 딛고
창 밖에 사슴이 - 백명희
봄 학기 첫 강의 시간이었다. 교실에 들어가 강의를 시작하자마자 '똑딱똑딱' 하는 소리가 신경에 걸렸다. 하던 말을 그치면 그 똑딱거리는 소리도 멈췄다. 아주 기분 나쁜 강의 시간이었다. 다음 주 또 그 시간이 되었다. 교실에 들어가 막 수업을 시작했는데 교실 앞문으로 뒤늦게 들어오던 한 학생이 마침 비스듬히 놓인 책상 모서리에 부딪쳐 넘어지려는 순간, 둘째 줄에 앉은 학생의 재빠른 도움으로 용케 넘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보고 강의실 가득히 앉았던 학생들 중 누구 하나 웃지 않는 게 참으로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뒤늦게 들어온, 넘어질 뻔했던 그 학생을 주시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학생 쪽에서 똑딱거리던 그 소리가 또 들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 학생이 점자를 찍어 노트 필기를 하는 소리였다. 그 학생은 어릴 때 약을 잘못 써서 실명하게 되었고, 대학에서는 수학과를 지원하였지만 교수들의 권유로 철학을 전공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학생은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것도 자기처럼 신체적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뭔가를 이뤄 보려는 학생을 가르치는 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내 교직 과목을 줄곧 신청하게 되어 나는 그 학생과 각별히 친해졌다. 그 학생은 과제물도 꼭꼭 제때에 제출했다. 비록 어떤 글자는 종이 밖으로 밀려 나가고 글씨도 고르지 못했지만, 가까운 친구나 이웃에게 부탁해 읽으라는 참고 도서를 모두 읽고 리포트를 작성하곤 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화여자대학교로 옮겨 온 후 학생들을 인솔하고 학교 참관을 다닐 기회가 있었다. 어느 날은 맹인학교에 참관을 가게 되었다. 학생들과 조용히 수업 참관을 마치고 나오던 나는 "선생님!" 하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 무심코 돌아섰다. 바로 그 학생이 맹인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용조용히 말하는 내 말소리로 나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역시 의젓하고,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자신감을 갖고, 또한 보람을 느끼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중진의 교사였다. 오랜 꿈을 이룬 것이었다. 얼마나 값진 삶인가!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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