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집배원의 하루 - 이동만
우리가 행하는 하루하루의 작은 일들이 우주의 전체적인 조화를 유지시키는 힘이다. - 리시유의 성 데레사
6년째 접어든 집배원 생활입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부산시 서대신동 1가에는 아미동과 통하는 '까치 고개'가 있지요. 그곳에서 꼬부랑길을 따라 올라가면 '은하사'란 절이 있고, 그 절 위에는 '과분도리'라는 판잣집들이 덩그러니 모여 있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새벽에는 산더미같이 밀려오는 연하장과 크리스마스 카드 때문에 코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새벽같이 출근한 적도 많았고, 개가 두 다리를 물어뜯어 그 자리에 앉아 어린애처럼 운 적도 있습니다. 과분도리에는 보통 하나의 번지에 수십 수백 세대가 살기 때문에 통반이나 세대주 이름이 없는 '김자야' 식의 우편물을 배달하려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소프라노로 성악 연습을 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대답해 주는 이 없을 때는 야속한 편지의 주인을 원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오전 아홉 시에 우체국을 출발 열두 시까지는 일단 우체국으로 돌아왔다가 국수 한 그릇을 들이키고 오후의 일과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도장 받을 우편물이 많은 날에는 노루 새끼마냥 은하사 언덕을 마구 뛰어야 겨우 하루의 책임량을 다할 수 있지요. 하루는 시구청 뒷길을 돌아 바삐 걷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아저씨!" 하면서 뛰어왔습니다. 나는 혹시 귀중한 편지라도 땅에 흘린 게 아닐까 조심스레 뒤를 돌아봤습니다. 그런데 뛰어온 한 꼬마 녀석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 와 검은 옷 안 입었노?"
멍청히 내 옷을 훑어보니 5월부터 착용하는 하복 차림이었습니다. 내가 말했지요.
"꼬마야, 검은 옷은 인자 더워 못 입는다. 그래 이 흰 옷을 입었다. 내일은 니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올게."
나는 그렇게 꼬마에게 설명하면서 가볍게 녀석의 엉덩이를 두들겨 주었습니다. 그리곤 다시 걸음을 재촉하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하잘것없는 집배원의 일거일동을 유심히 관찰하는 저 꼬마가 있는데 내가 왜 외롭겠는가. (부산시 부산우체국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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