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가족
다 큰 딸을 빼앗기며 - 허수경
얼마 전에 읽은 한 아버지의 눈물은 정말이지 영화와도 같은 감동을 내게 주었다. 이제 막 웨딩 드레스를 입은 딸이 보낸 편지였다. 아주 어릴 적에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그녀는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 새아버지를 맞이했다고 한다. 조금 크긴 했으나 아직 철없던 시절, 그녀는 낯선 새아버지가 용납되지 않아 뾰족한 가시처럼 이곳 저곳을 쿡쿡 찌르며 아버지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고 한다. 가슴 저 깊숙이 동그마니 자리잡은 친아버지와의 짧은 추억에 새아버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고 벽을 쌓았다. 그런 그녀가 어느새 다 자란 지금,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힘겨운 성장을 뒤로하고 흰 웨딩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신부 입장을 했다. 어색하게 새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한 걸음... 한 걸음... 그녀는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새아버지의 팔을 뿌리치고 한 남자에게로 갔다.
식이 끝나고, 신혼 여행을 떠나는 그녀의 손을 새아버지가 잡으셨다. 한 번도 잡아 본 적이 없는 새아버지의 손 그리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눈물.
"내가 잘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잘살아야..."
새아버지는 잘살라는 말끝을 못 맺으시고는 딸을 안고 우셨다. 어깨를 들썩이시며 눈물을 펑펑 쏟으시며 목이 메어 한 말씀도 못 하시고 한참을 우셨다.
<전 그때 비로소 깨달았어요. 아버지가 날 정말 사랑하셨구나.>
나는 그녀의 편지를 읽으며 '아버지'라는 글자마다 파도치듯 떠오르는 내 아버지의 얼굴 때문에 괴로웠다. 딸이 자신의 반대에 그렇듯 '몰래 결혼'으로 맞설 줄은 꿈에도 모르셨던 나의 아버지. 결국은 하나밖에 없는 딸의 결혼식을 지켜보지도 못하고 배신의 상처를 홀로 곰삭여야 했던 나의 아버지. 뒤늦게 호적에서 가위표가 그어진 딸의 이름을 발견하셨을 때, 나의 아버지가 흘린 눈물은 얼마큼이었을까.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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