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첫느낌 그 설레임으로 살고 싶다
전윤호 - 나는 첫사랑을 믿지 않는다
멀리 서 있다 검은 윤곽만 보인다 죽은 숲이 가로막고 눈이 파란 짐승들 어슬렁거린다 우뚝 서 있다 바다가 보인다 한다 능선에 노을이 걸리면 바위들 묵묵히 타오르고 사방 물안개 돋는다 검은 새떼 푸르르 날리며 곡괭이질하고 싶다 광맥에 닿고 싶다 조난당하고 싶다 화석으로 남고 싶다 깊은 벼랑 위로 참나무들이 파수병처럼 서 있는 길이 없는 그녀
시 "그녀" 전문
나는 첫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 과연 내게 첫사랑이 있었단 말인가, 물론 그 동안 첫사랑이었다고 착각할 만한 감정의 충격상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사랑이라 부를 수 있었단 말인가, 사람들은 쉽게 사랑을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해 무조건 아름다운 사랑이었다고 단정짓는다. 그들에겐 당연히 첫사랑이 있고 마지막 사랑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맘껏 누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그런데 슬프게도 난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내겐 충분히 사랑이라 부를 만한 느낌이 없는 것이다. 이제 내가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거짓말이라는 걸 충분히 납득했을 것이다. 대신 이렇게 말하겠다. 이것은 첫사랑이 아니라 내가 가장 그런 종류의 감정에 근접했던 첫경험이었다고. 일생에 한 번은 어려운 시기가 있다. 불행에 불행이 겹치고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을 때, 평소보다 위축되고 나약해져 쉽게 우울해지는 것이다. 난 대학을 휴학하던 때 그런 경험을 했다. 스물한 살이었다. 그해 간경화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것이다. 아마 그 병이 아니었으면 돌아가신 뒤 한 달 후에 있었던 광산사고 때 돌아가셨을 것이다. 그때 아버지의 작업반 동료 대부분이 갱도가 무너지는 바람에 유명을 달리했으니까. 내가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탄을 실어 나르는 새벽기차를 타고 고향을 떠날 때, 나에게 고향은 마지막이었다. 아버지와 나를 이어주던 고향에 나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당신의 폐에 한 움큼의 탄가루를 쌓으면서 내게 남겨진 돈은 대학을 다니기엔 부족했다. 그렇다고 내가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을 받을 주제도 못 되었고 의무감이나 동정심으로 학비를 대줄 친척도 없었다. 내겐 나 자신이 전부였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무슨 대단히 불우한 처지에 빠진 것 같지만 사실 당시의 내 마음은 차라리 홀가분했다. 발목을 잡힐 걸림돌이 하나도 없는 자유스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난 그저 나만 돌보면 됐다.
서울로 와서 방을 얻고 나는 천호동에 있는 야간업소에 취직했다. 올림픽이 열리기로 되어 있었고 나라가 흥청망청하던 때인지라 그쪽에 자리는 많았다. 난 나비 넥타이를 매고 극장식 스탠드 바 입구에서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어서 옵쇼, 소리지르며 허리를 90도 구부려 인사를 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영업이 끝나고 의자를 탁자위에 올리고 걸레질을 하면 네 시 반, 방으로 돌아와 AFKN 틀어놓고 벽에 기대 잠드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때는 그저 영장이 나올 때까지 대기하는 시간에 불과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몸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특별히 어딘가 아픈건 아니었지만 체력이 딸리기 시작했다. 내게 내 몸은 가진 것의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이 집 근처에 있는 헬스클럽에 나가는 거였다. 지나가다 보면 찐빵처럼 부푼 몸을 한 남자와 수세미처럼 질겨 보이는 몸을 한 여자가 붙어 있는 사진이 눈을 끌던 곳이었다. 자고 나서 출근할 동안 딱히 할 일도 없었다. 러닝머신에서 뛰는 건 쉽지 않았다. 금세 숨이 차고 땀이 줄줄 흘렀다. 남의 눈에 띄는 게 싫어 사람들이 없을 때만 올라갔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이 되었다. 처음보다는 훨씬 많은 시간을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낸 주의를 끄는 여자가 하나 있었다. 척 보기에도 단단한 근육질의 몸매를 가진 아가씨였는데 하루도 운동을 거르는 날이 없었다. 아무튼 내가 가는 날엔 항상 그녀가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전문으로 운동을 하는 여자인 것 같았다. 운동시간도 길어서 보통 두세 시간을 헬스클럽에서 보냈다. 검은 런닝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모자를 눌러 쓴 그녀는 그렇게 몇 달 동안 나와 만났다. 물론 서로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모자를 눌러쓴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난 운동을 할 때도 안경을 써야 할 정도로 시력이 나빴다. 그녀는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30분도 좋고 한 시간도 좋았다. 어떤 때는 아예 두툼한 잡지책을 보면서 뛰는데 아무리 달려도 지친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어느 날 내가 터덜터덜 들어오는데 러닝 머신에 있던 그녀가 날 보고 고개를 까딱했다. 난 잘못 봤나 싶어 우물쭈물하다가 그냥 탈의실로 들어가고 말았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난 낭패한 기분에 빠졌다. 이제 어떡한다지 헬스클럽의 입구에는 이런 말이 표어처럼 붙어 있었다. '회원 상호간의 인사는 스포츠맨의 기본입니다.' 빌어먹을 난 스포츠맨이 아니니까.
어색한 표정으로 나오자 그녀는 앞만 보고 뛰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원래 순서대로 하자면 몸을 푼 뒤에 스태퍼를 하고 사이클을 한 뒤에 뛰는 거였다. 하지만 그날은 먼저 런닝머신에 올라갔다. 그녀의 바로 옆이었다.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더구나 내가 오르기를 기다렸다는 듯 그녀는 속도를 올리더니 달리기 시작하는 거였다.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나도 그녀의 속도에 맞춰 내 기계를 조작하고 함께 뛰기 시작했다. 나도 어느 정도 운동에 이력이 붙기 시작한 때였고 그녀는 이미 운동을 계속하고 있었으니까 내게 불리할건 없다고 계산했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면서 나는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이미 내 체력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는데 그녀는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던 것이다. 입에서 거친 숨이 나고 온몸이 땀으로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먼저 멈출 수는 없었다. 난 필사적으로 버텼다. 이젠 오기 하나로 버틸 뿐이었다. 그러나 25분이 되자 그것도 바닥이 났다. 심장이 터질것만 같았다. 그때 그녀가 내 모습을 힐끗 보더니 속도를 줄였다. 난 얼른 속도를 줄인 뒤에 내렸다. 그리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탈의실로 들어갔다. 탈의실로 들어가자마자 바닥에 쫙 퍼져 버렸다. 바튼 기침이 나고 온몸이 뜨거웠다. 한참 뒤에 샤워를 하고 나오자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오후 세시, 그곳엔 우리 둘만 있었다.
우리는 그날 이후 매일 같은 시간에 그곳에서 만났다. 가장 사람이 적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뛰면서 얘기하고 운동복 차림으로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녀는 백지처럼 순진했다. 전라도의 바닷가가 고향이라고 했는데 서울에 올라와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언니네 가게일을 도와주며 있다고 했다. 이름도 촌스러운 이경순, 그러나 그녀는 나를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강했다. 매사에 확실한 주관이 있고 자신감도 있었다. 그것은 시골에서 자라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점점 말이 많아졌다. 그러자 그녀는 신기해 했다. 처음엔 내가 벙어리나 성격장애자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좀더 다가가기 위하여 노력하지 못한 건 그녀를 꺼려서 그런 건 아니었다. 어차피 난 곧 군대에 가야 했다. 난 그저 그녀를 헬스클럽에서 매일 만나는 것에 만족하려고 노력했다. 그녀의 건강한 웃음과 순진함이 좋았다. 그러나 어느새 난 그녀에게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그녀의 꿈을 꾸다가 깨어서 난 그 사실을 깨달았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빠지는 일은 얼마나 두려운 사건인가. 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거나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를 보는 감정을 억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하던 곳이 미성년자를 접대부로 고용했다는 이유로 영업정지를 먹었다. 본의 아니게 실직자가 된 웨이터들끼리 송별회를 열었다. 1차가 가고 2차가 되자 자연히 나이가 비슷하고 통하는 팀들끼리 남게 되었다. 그날은 나도 많이 마셨다. 곧 입대하라는 영장이 왔던 것이다. 3차가 되자 누군가 제안했다. 각자 애인을 부르자고, 못 부르는 사람이 술값을 내기로 했다. 난 취중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그녀가 왔다.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일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운동복만 입은 모습만 보다가 처음 본 그녀의 성장한 모습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는 표현은 물론 내 주관이 많이 들어간 과장이었지만 아무튼 그녀는 축 처진 나를 대신해 술을 마시고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부르스도 추었다. 참 내, 난 투덜거렸다. 전에 그녀가 "전 소주 세 잔만 마시면 가버려요" 하고 웃던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녀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얼른 그녀를 데리고 나왔다. 밤 세 시였다. "아니, 술도 잘 마시지 못한다는 사람이 웬 술을 그렇게 마셨어요?" 그러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이왕 나왔으니 분위기는 깨지 말아야 하잖아요." "참 이상해요, 밖에서 보니까 전혀 다른 사람 같아요" "왜요? 제가 좀 이상하게 굴었나 보죠?" 그녀가 나를 보고 말하는 순간 나는 그녀의 입을 막고 말았다. 천호동의 골목에서 전신주에 기대어 한 내 일생에 첫 번째 키스였다. 나는 떨고 있었다. 화를 내면 어쩌나. 그러나 그녀는 내 품에 폭 안겨서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혀를 내밀었다. 난 다리가 떨려서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술을 취하도록 마신 것이 후회스러웠다. 온전한 정신으로 이 순간을 느껴야 하는건데. 나는 얼떨결에 바보처럼 그녀에게 말했다. "사랑한다"고 그리고 1초도 안돼 후회했다. 그녀는 너무도 태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쓰다 달다 말 한마디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집 앞에서 난 말했다. "할 말이 있어요. 저 곧 군대가요." 그러자 그녀는 씩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요? 잘 다녀오세요."
그날 이후 난 운동을 끊었다. 그리고 그녀의 전화번호를 지워버렸다. 입대하던 날 가장 친하게 지내던 동료에게서 그녀의 소식을 들을 때까지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잊으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역으로 배웅 나온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니가 불렀던 그 여자 말이야, 이름이 이주리라며, 동식이가 새로 들어간 업소에 나온다더라. 아, 오늘 같은 날 좀 나오라 그러지. 너도 참."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가 부대로 편지 한통을 보냈다. 그게 그녀와의 마지막 접촉이었다.
너무 순진한 당신에게 겁이 났어요. 잘못하다간 둘 다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가 냉정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앞으로 여자의 말을 다 믿지 마세요. 그리고 쉽게 속마음을 털어놓지도 말구요. 사랑은 쉽지 않아요.
- 전윤호 1964년 정선에서 태어나서 동국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9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이제 아내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 가 있고, 우화집으로 '한국판 어린 왕자'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