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첫느낌 그 설레임으로 살고 싶다
배문성 - 연희
저녁까지 집 앞을 지나간 것은 자전거 한 대, 개 두 마리였다. 그리고 잠시 싸래기눈이 왔다. 노을이 지는지 언덕에 나무 세 그루가 차례로 나타났다. 흰 측백나무, 흰 측백나무, 느티나무, 그리고 저녁이 된 것이다. 전화가 왔다. 벨소리는 노을 속에서 흘러나온다. 한 번, 두 번, 다섯 번, 노을 속으로 전화하는 것이 이렇게 멀다. 가마득히 나는 네 목소리에 담겨 있다. 붉은 외등이 켜지는 동안 목소리가 사라진다. 꾸부정하게 서 있는 그림자를 핥으며 바람이 지나간다. 겨울이 다 가고서야 나는 왜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나는 왜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을까. 사실 나는 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몰두해 있었다. 내가 너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내가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지 않는 것은 너뿐이 아니다. 찾을 수 없었다. 아니면 오지 않는 것인가. 우리가 찾지 않은 것인가. 우리가 찾아낸 것은 느낌이었다. 느낌이라. 찾아가지 않을 것. 보지 않을 것. 만나지 않을 것. 기다리지 않을 것. 듣지 않을 것, 아,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철저하게 사라지지 말 것. 기미를 남겨둘 것. 자전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버린 모든 사람이 그리워진다.
시"노을의 집"전문
그때가 제일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계획대로 살아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는지. 계획 없이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무엇을 하기도 그렇고 안 하기에는 시간이 넘쳐나는 어중간한 사이에 우리는 놓여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시험쳐 놓은 대학에 가지 않고 있었다. L은 자원입대신청을 해서 군대에 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둘다 뭔가 이뤄지지 않아서 답답했고 무엇인가 하고 싶었지만 시작하기에는 남겨진 시간이 짧았다. L의 집은 대가족이었다. 집 나간 아버지를 빼고도 4대가 모여 살고 있었다. 어머니 혼자 집안일을 다 꾸려나가고, 위로 거의 거동을 못하는 할아버지, 할아버지 수발에 하루 해를 다보내는 할머니, 결혼해서 애기 둘은 모친에게 맡기고 1년에 두서너 번씩 집안을 들락날락하는 맏형 가족. 아직 학교 다니는 두 여동생, 저능아인 바로 윗형. 그리고 멀리 스페인에서 혼자 돌아온 고모까지. L의 말로는 인구 센서스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 집안이었다. 거기에 지난 가을부터 나까지 껴붙어 있었다. 하긴 워낙 들락거리는 식구가 많은 집안이어서 그런지 객식구 하나 곁붙어 있었도 아무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행랑에 머슴 하나 들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때였다. 우리의 행랑은 집 한가운데 있는 부엌 위에 달아 만든 다락방이었다. 난방기구 하나 없었지만 부엌에서 나오는 온기로 겨울을 보내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 내가 그 집에서 거의 5개월여를 지냈는데도-지냈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L의 집안 식구와 얼굴이 마주친 것은 손꼽을 정도였다. 그러니 식구들은 아마 내가 한번씩 놀러온 정도로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우리가 다락방으로 숨어드는 시간은 대개 통금이 끝나고도 한두 시간이 지난 새벽 한두 시경이었으며, 대충 훤한 대낮이 되어야 집을 새나갔다. 그 시절에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별로 기억이 없다. 아마 우리는 별말을 했던 것 같지 않다. 하루종일 붙어다녔지만 각자 가지고 있던 어중간한 시간과 그 틈에 끼어 있는 사건들을 '째보려는 것'만으로도 우린 신경이 피로했다.
그때 우리는 길고 긴 하루를 무엇으로 채웠던가. 동래 시장통 한가운데, 옥샘다방이라고 있었다. 점심 무렵 L의 집을 나온 우리는 그때서야 문을 여는 옥샘다방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모닝 커피'를 시켜놓고. 연희라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아주 우아하게 생긴 마담 언니와 둘이서 다방을 꾸려나갔다. 연희는 갓 스물을 넘겼을 나이인데도 야릇한 교태를 천생으로 듯이 다방을 휘젓고 다녔다. 시장통의 젊으나, 늙으나 거친 장돌뱅이 상인들은 오로지 연희를 보려고 찻집에 온다는 것이다. 연희는 옥샘다방의 스타였다. 연희의 팬들은 그녀의 다소 과장된 콧소리 한번 짧은 몸짓에도 오금을 펴지 못하고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어쩔 줄 몰랐다. 그럴수록 연희는 제 애비뻘은 됨직한 다방 손님이 사촌동생이나 되는 듯이 썩 반말로 건드리고 어르는 것이 프로급이었다. 보통 밤 10시면 문을 닫는 다방이 통금시간이 되도록 문을 닫지 않을 때는 대개 연희와 어떻게든 하룻밤을 '보내려고' 연희를 기다리는 패가 죽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우리의 연희는 외박을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들었다. 우리는 연희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우아한 마담 언니에게서 전해들었다. 실제로 우리는 옥샘다방을 출입하는 고정 멤버들중에서 연희에게 관심이 없는 거의 유일한 그룹이었다. 아니 그때 우리가 무엇에 그렇게 관심을 기울인 것은 없었다. 연희보다 더한 절색이 있었어도 다시 아픈 춘사를 펼치고 가다듬기에는 시간도 마음도 다함께 짧고 절박했다. 마담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에게 연희의 전적을 보고 했다. 몇 놈이 또 늘었다. 오늘은 몇 놈이 물먹을 거야. 아주 몇 놈은 연희 때문에 맛이 갔어. 등등등등등 마담은 우리도 연희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야말로 연희에게 관심이 없어보이는 안전한 동네라고 생각했는지 시시콜콜 연희의 하루 구력을 알려줬다.
마담과 연희는 꽤나 이상한 아니면 아주 합리적이 공생관계를 유지했다. 내가 보기에는 연희보다 훨씬 우아하고 아름다운 마담은 젊고 싱싱한 연희의 인기를 시기함 직도 했다. 마담은 연희 때문에 골치아파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러나 연희는 옥샘다방의 '돈줄'이었으며 차 팔아주는 '인기상품'이었다. 상품관리는 마담의 몫이었으며 그것이 마담의 골치덩어리였다. 마담이 할 일은 연희에게 들어붙는 암내 맡은 수컷들을 매일밤 떼어내는 거였으며, 연희에게 과도하게 손장난을 치는 남정네를 남새스럽지 않도록 물리쳐주는 거였다. 마담의 상품관리는 논리에 따르면 연희가 외박을 하지 때문에 저것들이 저렇게 법석을 떤다는 거였다. 만약 연희가 외박한다는 소문이 나면 이 좁은 시장통에서 반나절이면 짜르르 전시장이 다 알 거라는 거였다. 연희의 인기는 그녀의 교태, 목소리, 능숙한 화술에도 있지만 결정적이 것은 '안 주는 데' 있다는 거였다. 우리는 마담 언니를 통해서 연희의 하루 일과를 꿰뚫고 있었지만 근 반년에 이르는 옥샘다방 출입기간 동안 연희와 간단한 대화라도 해본 기억이 없다. 물론 연희는 제 풀에 깐죽거리는 붙이들 상대하기에도 안중에도 없어 하는 우리에게 말이나 한번 붙일 겨를이 있겠는가. 우리의 연희는 스탄데.
그때 그 1997년이 저물던 12월 31일, 통금이 없던 날만 빼고. 그날도 마담은 연희 때문에 겪은 온갖 해프닝을 길게 풀어 놓고 있었다.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머리가 찌근찌근 하다는 등, 저 × 때문에 자기가 10년은 먼저 간다는 등. 마담의 댓거리는 모두 자신의 돈줄인 연희를 향한 것이었지 그 문제 '원인제공자이기도 할 × 달린 놈'들에게는 단 한 번도 보내진 적이 없었다. 마담의 말에 따르면 연희는 그날 좀 '오버'했다. 망년회다 뭐다 하니까 오늘 매상을 팍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은 이놈저놈 권하는 '티'를 삼켰다. 홍차 속에 몇 방울 떨어트린 독한 화학주에 연희는 취했다.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다방에 들어선 우리 눈에도 연희는 맛이 가 있었다. 연희의 코맹맹이는 더욱 엉겨 있었다. 예나 오늘은 뿌리를 뽑겠다는 듯이 다방에서 차 대신 엉터리 위스키로 취한 몇몇 팀이 죽치고 있었다. 아예 사생결단을 내겠다고 연희를 끌고가려는 자도 있었다. 그 자는 대단한 결심을 온 다방에 공표하며 아예 입구를 막고 서 있었다. 마담의 한숨과 시기, 질투가 뒤범벅된 연희 성토를 시간여나 듣고 난 우리는 한잔 더 하러 나섰다. L이 새해 첫 달에 입대한다는 것도 우리에게는 의미심장케 했다. 다방 문을 나서면 꺽어지는 골목이 있다. 거기에 작은 가게가 있는데 우리가 행랑에서 새벽 언제나 술 고프면 문 두드릴 수 있는 집이었다. 그날 아직 덜 취한 속을 채우려면 소주 몇 병이 더 필요했다. 그런데 그 가게집 작은 간판 아래에 연희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연희는 자기를 오늘 좀 데려가 달라는 거였다. 우리는 우선 서로 얼굴을 마주 댔다. 나? 아니면 나? 연희는 취하지 않았다.
"오늘 해결 돼요? 안돼요"
연희는 마치 횡재라도 안겨주려는 듯한 태도였지만 미안하게도 우리는 당황스럽고 난감했다.
"우리 술마시려 가려는데."
우리가 어쩌려고 연희를 데리고 술 마시러 갔는지 모르겠다. 연희는 어쩌려고 우리와 술 마시러 L의 집 다락방 우리의 행랑에까지 좇아왔는지 모르겠다. 연희는 오늘 사생결단을 내겠다고 벼르는 그 자에게 옷 갈아 입고 오겠다며 달래고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 자는 지금도 다방에서 죽치고 있을 거라고 낄낄거렸다. 그리고 내일부터 옥샘다방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순간 참으로 바보스럽게 물었봤다.
"왜 가게 앞에 있었어?"
연희는 들었는지 소주만 털어넣었다. 아마 연희가 먼저 잠들었던 것 같다. 그녀는 몇 잔 마시지 않았다. 우리는 남은 술을 마저 먹었다. 그리고 나는 한쪽 옆에 쓰러져 잤다. L은 입대하는 것이 차라리 홀가분하다고 했다. 머리를 박박 깍은 L은 정말 어떤 변화 앞에 기대에 차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L이 부럽기도 했다. 정말 L은 이제 어중간한 시간을 깨뜨리고 무엇이 될 수 있는 출발점에 서 있는 듯이 보였다. 입대는 동래역에서 했다. 플랫폼에서 우리는 별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제 혼자 남겨진 시간을 절감하고 있었다. 게다가 앞으로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당시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미결정의 시간 속에 내가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L은 이제 들어가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왜 눈물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나는 서러웠다. 군대 가는 L을 부러워해야 하는 내가 서러웠고, 군대 가는 것도 기꺼워해야 할 만큼 절박한 L이 서러웠다. 아주 부끄웠지만 나는 눈물이 줄줄 나왔다. 도리어 L이 당혹해 하는 것 같았다.
"임마, 너 때문에 우는 것 아니니까 신경 꺼!"
L은 제가 날 위로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씩씩하게 기차를 타야 하는지 혼란스러운 것 같았다. 연희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연희는 김밥까지 싸서 L의 앞에 서 있었다. 줄줄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나는 미처 못 본 것 같았다. 연희는 L의 손을 꼭잡고 말하고 있었다.
"나 다시 옥샘다방에 나가. 휴가 나오면 들러."
우리의 행랑시절은 그렇게 끝났고 L이 그날 행랑에서 연희와 무슨 일을 벌였는지, 또 휴가 나와서 옥샘다방에 들렀는지, 그때까지 연희가 옥샘다방에 있었는지 우리는 이야기한 적이 없다.
- 배문성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나 건국대 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2년 월간 시지 '심상' 으로 등단. 시집으로 '당신들 속으로'를 펴낸 바 있다. 현재 문화일보 문화부에 근무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