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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이었습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계속 걸려 왔지만 평소 낯선 번호의 전화는 받지 않기에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약 두 시간 동안 여덟 통의 부재중 전화와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제주도의 한 병원에 계시니 연락 바란다는 내용에 덜컹! 후들거리는 손으로 동생에게 연락했습니다.
아버지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배를 타십니다. 아버지는 부산에, 엄마와 우리 자매는 인천에 살면서 왕래 횟수가 부쩍 줄고 거리감이 생겼습니다. 오래전 어느날, 배를 탈 거라는 아버지 말씀에 우리는 짜증부터 냈습니다. 선박 사고 등 위험한 일로 우리의 평온에 찬물을 끼얹을 것 같아서요. 그저 우리가 드리는 용돈으로 조용히 사시기를 바란 겁니다. 아버지는 피해 안 주겠다며 우리를 달래셨습니다.
아버지는 겨울 끝물이 넘실거리는 차가운 바다에 빠졌다가 구조되셨다고 합니다. 놀라움이 가라앉자 당시 아버지가 취중이셨다는 병원 쪽 말에 화가 났습니다. 하지만 동료분 얘기를 듣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사고 직후, 알 수 없는 말만 되풀이하던 아버지에게 연락할 가족이 있느냐고 묻자 두 딸의 휴대 전화 번호를 또박또박 불러 주셨다는 겁니다. 단축 번호만 아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놀랐습니다. “아빠. 우리 전화번호는 언제 외우셨어요?”“니들하고 내가 그거밖에 더 있나!” 가족이라는 외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아버지는 그 번호를 얼마나 외우고 또 외우 셨을까요? 그 줄을 튼튼하게 만드는 건 우리 몫이겠죠. 노력할 겁니다.
하민정 님(가명) | 인천시 남구
-《좋은생각》2010년 8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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