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첫느낌 그 설레임으로 살고 싶다
이경림 - 그 청보랏빛 새벽길
눈보라 속을 걷고 있었네 제 그물에 갇힌 거미처럼 가로 세로 마구 뒤엉킨 눈발들이 뽀얀 허공 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어디선가 아련히 유리 깨지는 소리 같은 것 들렸네 그때 우리는 그 밑을 묵묵히 걸어가는 먹물 같은 시간들이었을 터 눈발 사이, 밤의 푸르름은 형광빛으로 번득이고 무슨 긴 모래 같은 아픔이 그와 나 사이를 흘러갔네 거대한 밤의 나무들! 이파리 뒤에서 번득이던 수천 개의 눈알들. 툭툭 먹물 같은 눈물이 터졌네 생각나네, 먹어도 먹어도 갈증 솟던 그 검은 우물물 수면 위로 어른거리던 알 수 없는 무늬들, 문득 내 안에서 한때의 구름이 일었네 나는 갈참나무 한 잎처럼 가볍게 혹은 무겁게 흔들렸네 흔들리면서 검은 구름 한때를 고요히 게워냈네
시 '그 겨울 밤'전문
너를 만난다 절망은 미친 바람으로 내 등을 밀어붙여 나를 바다의 끝에 데려다 놓는다 그 끝에서 허기처럼 너는 온다 파도를 등에 업고 어둠의 언저리를 서성거린다 등대 옆에 있는 풍향계를 밟고 도는 바람이 너를 자꾸 기울게 한다 모래사장이 점점 솟아오르고 바람이 죽은 나무들을 깨운다 너의 파도에 내가 휩쓸린다
'안암동 5- 연애'
인생을 계절로 표현한다면 4,50대는 다사다난했던 한 생의 가을쯤이 아닐까? 그것들 중, 그나마 축축하게 오래 끌어안고 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된다. 라즈니쉬 수상집에 보면 '모든 사람이 황금빛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나 착각이다. 황금빛 어린 시절은 없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생에 있어서 단 한번 황금빛 아니 핑크빛 시절이 있다면 그것은 첫사랑을 시작할 무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무렵의 누구도 그 환상적인 색채의 아우라속에 한번쯤 갇혀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그것이 이루어진 사랑이든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든 우리는 일생을 통해 그 찬연한 기억을 쉽게 지우지 못할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것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일 때 더욱 감미롭게 기억될 것이다.
나는 열일곱 살이었고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우리 집은 고려대 뒤쪽 안암동 산동네에 있었다. 산기슭에 물방게처럼 붙어 있던 집들, 겨울이면 숫제 앉아서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던 왕모래의 길. 종일 그치지 않고 들리던 싸움소리. 공동수도에 끝없이 늘어서 있던 입 벌린 물통들...... 우리는 그곳에서 이웃으로 만났다. 그는 시골에서 올라온 유학생이었다. 햇빛이 투명했던 봄날. 베레모에 제비꼬리 칼라의 교복을 입은 나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낑낑거리며 비탈을 오르고 있었다. 거의 꼭대기에 있는 집까지 올랐을 때, 나는 풀밭에서 네댓 살 된 이웃집 경이를 데리고 장난을 하고 있는 그를 보았다. 그 애는 나를 보고 '언니!'하고 부르며 쪼르르 달려왔다. 그 아이는 아버지 친구의 딸이었던 것이다.
"우리 오빠야, 시골서 왔어. 우리 집에 살 거야."
얼굴이 까맣고 수줍음을 타는 전형적인 시골 학생인 그는 나를 보며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히며 서 있었다. 나도 왠지 쑥스러워 그냥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그후 우리는 양쪽 집이 가까웠던 관계로 자연스레 친해지게 되었다. 그는 자존심이 유난히 강한 공부벌레였다. 우리는 집옆에 있는 개척교회에 딸린 토굴 기도실에서 밤샘 공부를 같이하는 동지가 되었다. 지금도 생생하다. 밤새 축축한 토굴 속에서 '어부사시사', '월인천강지고', '사미인곡'등을 '노란 셔츠 입은 사나이'의 곡에 붙여 외우던 기억이며, 그때 서울에서 처음 생긴 정릉의 사설 독서실에서의 밤샘 공부, 새벽 네 시쯤이면 문득 졸음이 걷히고 혓바닥에 이끼가 돋는 듯하던 신신한 느낌이며, 돔바위산 및 채석장에서 그가 불러주던 '딜라일라'. ......그래 지금도 생생하다. 독서실에서 함께 돌아오던 청보랏빛 새벽 산길, 부모님 몰래 보았던 '쉘부르의 우산', '벤허', '율리시즈', '콰이강의 다리'....... 그때 우리는 차비 3원이 없어서 돈암동에서 재동까지 걸어 다니는 가난뱅이들이었지만 그와 나를 잇는 보이지 않는 푸른 끈이 우리를 슬프지도 지겹지도 않게 해주었다. 어느 날은 밤샘 독서실에서 코피 흘리는 그를 부축해 오기도 했고, 대학시험을 며칠 앞둔 어느 폭설이 내리던 날은 이상하게 절박해져 수유리 4.19묘지까지 걸어갔다 오기도 했다. 고3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데 라디오에서 '북치는 소년' 이라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날따라 그 곡이 왜 그리도 슬프고 애절한지, 온몸의 뼈가 아픈 슬픔이란 이런 거구나......, 처음 알았다. 불현 듯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새벽 두 시에 나는 몽유병 환자처럼 밖으로 나가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고려대 뒷산을 가르는 오솔길이 그날따라 유난히 희게 빛났다. 이파리들은 아청빛으로 반짝이고 세상이 형언할 수 없이 가볍고 슬픈 것들에 싸여 흔들렸다. 그의 방에 발그레한 불빛이 보였다. 그것은 손 닿을 수 없는 먼 세상의 것처럼 깊고 아득했다. 나는 그의 방이 비스듬히 보이는 둔덕에 아주 오래 앉아있었다. 발 아래 세상의 불빛들이 별처럼 반짝였다. 그때 나는 천상의 어떤 세상에 있었다. 어쩐지 그와 내가 무슨 슬픈 비극 속의 연인들처럼 느껴졌다. 그때의 상황을 나는 첫시집의 안암동 연작에서 이렇게 썼다.
누가 씹다 버린 희망이나 못다 이룬 잠 더럽혀진 그리움 같은 것들이 판잣집 촉수 낮은 불빛에 고여 골목길을 돌아오는 너의 좁은 어깨를 바라보는 일은 하릴없고.....어둠이 비탈길을 휩쓸 때 산 뒤편 부촌으로 난 오솔길은 무섭도록 희다 삶이여 키 큰 바람이 산 아래서 우악스레 거슬러 오를 때 황사에 싸여 회오리처럼 몰려오는 허기여 아, 하루는 허기처럼 길고 거리에는 이루지 못할 사랑이 휴지처럼 쌓인다 숨고 싶어라 돔바위 산을 스미는 시린 물소리 바람소리 거친 숨소리 울음소리 그 아래로 어둠에 쌓인 산 서서히 제 그림자를 키우는
'안암동 1-돔바위 산'
그날 이후 얼마동안 나는 그의 방의 불빛이 꺼지고야 잠드는 버릇이 생겼었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입시를 앞둔 이들 특유의 초조에서 나오는 광기쯤으로 생각했다.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우린 너무 어렸고 또 너무 가족 같았기 때문이다. 그 겨울이 가고 그와 나는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그는 학교가 가까운 동네로 가정교사 자리를 얻어 이사를 했다. 그리곤 각자 새로운 환경과 생활에 적응하기에 바빠 자주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언제나 내 가슴 한켠에는 그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입대하게 되었다고 나를 찾아왔는데 그때 나는 너무 가난했던 집안 사정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될 형편에 놓여 있었다. 그 때 나는 정신적으로 말 할 수 없이 황폐하고 지쳐 있었다. 그가 내게,"헤어져 있는 동안 네가 얼마나 나에게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어"하고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할 때 나는 "그런 한가한 생각은 부르주아들이나 하는 거 아냐?"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 버렸다. 그리고 나는 생기지도 않은 애인이 생겼다고 나 따위는 잊어버리라고 마구 지껄어댔다. 나는 모든 것이 벽이고 벼랑이라고 생각되었다. 끝간 데 없는 분노와 반발만이 몸과 마음을 휘감고 있었다. 그는 내가 너무 황폐해있다며 화를 냈고 우리는 강이 내려다보이는 어느 뚝방에서 밤새 다투다 지쳐 그저 말없이 앉아 있었다. 이튿날 그는 군에 입대했고 그것이 그와 나의 마지막 만남이 되어 버렸다. 그후 나는 내가 예감했던 대로, 말도 안되는 이른 나이에 결혼해 버렸다. 그것은 나보다 휠씬 윤택한 환경에 있던 그에 대한 반발이나 일종의 시위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오랜 후에야 나는 생각했다.
첫사랑의 기억은 대개 어떤 아우라에 싸여 우리들의 뇌리에 혹은 가슴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남이 보기엔 정말 미미하고 하찮은 일일 수도 있는 순식간에 어떤 광휘에 휩싸여 생의 한 순간을 휘어잡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시작된다. 그 순간의 일어나는 그 신비스런 움직임을 어떤 과학자가 어떤 증명으로 해석할 수 있겠는가? 나의 졸작 중에 이런 시가 있다.
희양산 계곡 물 속에서 돌 하나 보았다 수많은 돌 틈에서 유난히 다른 색깔로 물살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위를 흐를 때 물은 아주 다른 빛깔이 되었다 물의 미세한 결이 다 보였다 순간이었다, 그를 벗어난 물은 태연히 다른 몸들을 넘어갔다 어둑한 몸들을 넘어가는 물소리가 계곡을 꽉 붙들고 있었다
- '돌'
어느 날 나는 어떤 계곡 물 속에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빛깔의 돌을 발견하였다. 그 빛깔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 위를 흘러가는 물까지 다른 물과는 다르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그 흐르는 물 속의 돌과 그위를 흘러가는 물을 자세히 보았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돌은 그 자리에 그냥 있었지만 그 위를 흘러가는 물은 끊임없이 새로운 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물들은 한결같이 그 돌 위에서만 유난히 다른 빛깔로 반짝였다. 아주 잠깐! 그것을 넘어 간 물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히 다시 어둑한 빛깔이 되어 계곡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인생도 그런 것일 게다. 우리가 사랑을 느낄 때, 혹은 사랑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누구나 한번쯤 그 순간의 돌이나 물이 될 것이다. 그때 그 물이나 돌은 그 순간 그곳에 있었으므로 서로 반짝일 수 있는 것이다. 맥 빠지는 이야기 같지만 나는 그때 물속의 돌을 물 밖으로 꺼내보았다. 그러나 물을 벗어난 돌은 물이 마르자 순식간에 여느 돌과 다를 바 없는 아주 평범한 한돌멩이가 되어 버렸다. 사랑도 마찬가지리라. 근래에 와서야 나는 사랑이란 하나의 '상황'이란 걸 알았다. 후일담이지만 나는 그 사람을 아주 오래 후에(40이 훨씬 넘어)우연한 기회에 한 문인의 집에서 만났다. 처음 우리는 서로 잘 알아보지는 못했다.
"혹시.....안암동에 살던 경림씨 아니세요?"
이런 어색한 탐색전이 오간 뒤에야 서로를 알아볼 정도였다. 나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과연 이 사람이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고 애틋해 했던 그 사람이란 말인가? 그는 너무나도 평범한 40대의 찌들린 샐러리맨의 모습이었다. 적당히 포기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언뜻 탐욕스런 모습까지 보여주는 그를 보며 나는 한량없이 쓸쓸했다. 과연 이 사람이 수십년 내 가슴 한켠에 집을 짓고 한사코 떠나지 않던 그 사람이란 말인가? 그때 나는 내가 사랑했던 것이 '사람'이 아니라 그때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던 '젊음'이나 '상황'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그러나 상황이든 젊음이든 아니면 잠깐 스쳐 지나가는 어떤 사건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첫사랑'이란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는 생의 과자인가!
이경림 - 1989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했다. 시집'토씨찾기', '그 곳에도 사거리는 있다', 시절하나 온다, 잡아먹자'들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