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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작 PD로 산다는 것
전쟁이다. 첫 방송을 앞둔 이 시점에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처음도 아닌데 꼭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마냥 모든 것이 불안하고 아슬아슬하다. 입안이 바싹바싹 마른다. 누군가 건드리면 폭발해 버릴 것만 같은 이 초조감.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마음도 몸도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드라마 제작 프로듀서다.
제작 프로듀서가 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담배를 피워 볼까'였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만난 스태프들이 대부분 남자였기 때문이다. 일을 하다 보면 소소한 갈등을 빚게 마련인데, 신기하게도 담배 한 대 같이 피우는 이 단순한 행위가 일을 보다 쉽게 풀리게 하는 모습이라니. 결국 담배를 피우는 것은 포기했지만, 덕분에 낮술을 즐길 만큼 술이 많이 늘었다.
얼마 전 종영된 <온에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제작 프로듀서가 저런가?', 'B팀까지 돌려야 할 만큼 빡빡한 촬영 일정에도 참 예쁘게 하고 다니네.'등 동료들 사이에서 여러 말들이 오갔다. 물론 결론은 '드라마니까!'였지만. 흔히 제작 프로듀서 하면 제리 브룩하이머를 떠올린다.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최고의 흥행작을 쏟아 내고 있는 그는 말 그대로 이 시대 최고의 프로듀서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선 아직 먼 얘기다. 드라마의 외주제작 비율이 높아지면서 제작 프로듀서의 위상이 나아지긴 했지만, 작가와 연출자의 힘이 워낙 크기 때문에 좀처럼 제 의견을 관철시키기 힘든 게 사실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작가나 연출자에게 일방적으로 깨지기 일쑤다. 가끔은 연출자를 비롯한 스태프들과 40대 1로 싸우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동료에서 '돈만 아끼려는 제작 프로듀서'로 전락하는 건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우연찮게 내 인터뷰 기사를 읽고 한 친구가 제작 프로듀서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느냐, 어떤 자질이 필요하냐 등 이것저것 물어 왔다. 나 역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에 잘은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웬만한 각오 없이는 하기 힘든 일이라는 것(연애는 포기한 지 오래다). 특히 여자가 하기엔 험한 일이라는 것(점점 입이 거칠어져서 큰일이다). 하지만 한번쯤 도전해 볼 만한 일이라는 것(삶이 다이나믹해진달까?). 아, 그나저나 얼마 전 첫 전파를 탄 드라마가 잘 돼야 할 텐데 걱정이다.
- 「행복한동행」 2008년 8월호 중에서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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