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그대만을 영원히 사랑해.'
오선지를 사용할 줄도 모른 어빙 벌린이 미국 음악에 영향을 끼친 작곡가가 된 것은 거리를 떠도는 장님 악사의 손을 붙잡고 길을 인도하는 생활을 하는 동안 가슴속 깊이 울리는 멜로디를 스스로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기 2천 년이 되면 미국 음악의 탄생일과 어빙 벌린의 탄생일은 같은 날이었다고 반드시 음악비평가가 말하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그런 생각이 든다." 미국 최고의 작곡가인 카펜터가 한 말입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부활절 행진'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Gad bless America)' 등의 곡을 작사 작곡해 지금까지도 미국을 감동시키고 있는 어빙 벌린은 미국 유행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입니다. 1888 년에 태어난 벌린은 가족들과 함께 1892 년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악취가 코를 찌르는 컴컴한 선창 속에 처박혀 윗칸에서 떨어진 칼을 맞아 상처를 입으면서 대서양을 건넜습니다. 빈손으로 미국에 도착한 일가는 편물 수공업, 공장일, 정육점 등에서 일을 하며 어두운 지하 셋방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러시아의 끔찍했던 생활에 비교하면 마치 천국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늘 감사의 기도와 함께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라고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벌린은 어머니의 이 중얼거림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노래의 내용은 어머님의 입을 통해 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다. 노랫말은 가슴속 깊은 데에서 떠오른다."
1939 년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벌린은 이 곡을 발표했습니다. "또다시 세계대전이 벌어진다면 큰일이다. 정말로 온 미국이 일치 단결해서 일어서야 한다."라는 생각에서 발표했던 것입니다. 이 곡이 크게 히트하자 그는 애국심을 불러일으켜 돈을 벌려 한다고 비난을 받을까봐 인세를 모두 미국의 보이스카웃과 걸스카웃에 기부했습니다. 이듬해 이 곡은 전미 음악감상회로부터 그 해의 최우수 작곡상을 받았고, 순식간에 퍼져 나가 이젠 미국 제1의 국가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빙 벌린은 학교를 2 년밖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책도 끝까지 다 읽은 것은 아마 자신의 전기 정도일 것입니다. 유명한 알렉산더 올코트가 그의 전기를 벌린의 나이 35세 때 썼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선지도 사용할 줄 몰랐습니다. 따라서 그의 작곡은 멜로디를 그가 흥얼거리면 음악을 아는 비서가 악보로 작성했고, 음악을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주 젊었을 적에 확실히 배운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거리를 떠도는 장님 악사의 손을 붙잡고 길을 인도해 주면서 그 악사가 연극하는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곤 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발견하곤 했던 것입니다.
1920 년 벌린은 뉴욕 사교계의 우두머리를 아버지로 둔 엘린 메케이와 사귀게 되어 서로 사랑하게 되었지만 손님이 던져 주는 푼돈을 바닥의 톱밥에서 주워 싸구려 하숙비를 지불하는 벌린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행복한 삶을 누렸습니다. 벌린이 결혼 전 아내에게 준 생일 축하 선물에는 오직 한마디 '올웨이즈(Always)'가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는 가사 중 '그대만을 영원히 사랑해'라는 대목의 악보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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