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보이지 않는 충고
중학교 때의 일이다. 새학기 초라서 친구들과도 서먹서먹한 때였는데, 하루는 엄마 심부름으로 동네 구멍가게에 갔다가 같은 반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와는 말을 해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먼저 아는 척하기가 쑥스러웠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그냥 못 본척 물건을 고르다가 그만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주인 아주머니가 안 보는 틈을 타서 몰래 과자를 주머니에 넣고는 유유히 나가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몹시 당황해서 그 애의 뒷모습만 멍하니 쳐다 보았다. 그후에도 두세번 나는 우연히 그 애의 그런 행동을 목격했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나는 점점 학교에서 그애와 마주치는 것을 꺼리게 되었고, 그 애도 이런 내 태도를 눈치챈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그 애를 교실 밖으로 살짝 불러냈다. 그리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이젠 그런 짓 하지마!" 처음엔 그 애는 움찔 놀라는 듯하더니 한동안 말없이 나를 쳐다 보다가 조용히 교실로 들어갔다. 그 날 이후, 그 애는 내가 쳐다볼 때마다 일부러 나를 피하듯 고개를 돌리곤 했다. 나는 그 친구와의 어색한 관계로 늘 마음 한구석이 편치않았다. 그럭저럭 일 년이 지나고 드디어 졸업식 날이 되었다. 식구들에게 축하 인사를 받으며 졸업사진을 찍고 있는데, 저만치서 그 애가 꽃다발을 한아름 들고 내쪽으로 걸어왔다. 그러더니 수줍게 꽃다발을 내밀며 말했다. "현정아 고마워. 그때 나에게 충고래 주고 또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아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는 훌쩍 뛰어가 버렸다. 순간 내 가슴속으로 그 애가 주고 간 꽃다발의 상큼한 향내가 깊이 밀려 들었다.
강현정 님/경남 진주시 수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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