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 그리움을 참으면 별이 된다. -
가장 값진 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 해 가을, 나에게 가장 소중한 엄마가 쓰러지셨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옮겨 다니다 어느 큰 병원에서 '뇌지주막하출혈'이라는 병명으로 대수술을 두 번이나 받으셨다. 그때는 내가 직장 생활에 겨우 적응하여 안정을 찾고 있을 즈음이었다. 어렵게 한 달간 휴직계룰 내고 모든일을 뒤로 한 채 엄마의 병간호를 했다. 엄마는 두 번이나 수술을 받으셨기 때문에 한 달만에 퇴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생각다 못해 내가 일년 동안 쓸수 있는 연차와 월차를 미리 당겨서 다 썼다. 그러다 보니 한 달 보름동안 회사에는 서류가 쌓일 대로 쌓이고 일 처리는 늦어져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게 되었다. 그래도 엄마는 쉽게 낫지 않으셨다. 엄마를 간호하려면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할 상황이었다. 가족중에 엄마를 간호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 둘까? 하지만 엄청난 병원비는 누가 다 감당하고.....' 속상한 마음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친구 미숙이가 병문안을 왔을 때가 바로 그때였다. 나는 답답해서 미숙이에게 푸념을 늘어 놓았다. 그런데 이틀 뒤에 미숙이가 다시 병원에 왔다. "미숙아, 웬일이니? 회사는 어떡하구....." "그냥 일하기 싫어서 일주일 휴가냈다. 어머니 병간호나 할란다. 너는 회사에 가 봐라." 직장 생활하면서 휴가를 낸다는 것이, 그것도 갑자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씩이나 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미숙이는 일하기 싫어서 왔다고 하지만 나 때문에 일부러 휴가를 낸 것이다. 그것도 아무리 친구의 엄마라지만 남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힘든 간호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너무 고마워서 미숙이의 손을 잡고 한 참동안 울었다. 엄마는 미숙이의 그런 정성 때문인지 건강한 모습으로 무사히 퇴원하셨다. 엄마는 지금도 미숙이 얘기를 하신다. "미숙이한테 잘해 주거라. 그런 친구 정말 보기 힘들어." 나도 안다. 미숙이 같은 친구가 있는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신순영 님/경남 양산시 신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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