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 그리움을 참으면 별이 된다. -
부끄러움을 알게 해 준 친구
나는 어릴 때 몸이 많이 허약했다. 체력이 워낙 약한 탓도 있었지만 엄마의 지나친 보호가 나를 더욱 허약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나는 초등학교 일학년 때 체육 수업을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랑 뛰어논 기억도 별로 없고 소풍도 엄마의 채근에 못 이겨 억지로 따라 나섰다. 게다가 선생님들까지 내가 건강이 안 좋다며 많은 배려를 해 주셨기 때문에 나는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게 되었다. 이학년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일학년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체육 시간에 교실에 혼자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남자아이와 함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수업시간에도 모자를 벗는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시간, 그날도 그 애와 단둘이 교실에 남아싿. 나는 그 애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야, 왜 너는 내일 모자를 쓰고 있지?" 그 애가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무안하기도 하고, 장난기가 발동하기도 해서 나는 그 애 뒤로 슬금슬금 가서 모자를 확 벗겨 버렸다. 순간 나는 너무 놀랐다. 그 애의 머리엔 머리카락은 없고 듬성듬성 솜털 같은 것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그 애의 머리를 쑤욱 눌렀는데 물렁물렁했다. 그 애는 당황한 채로 서 있는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아무 말없이 마룻바닥에 떨어진 모자를 주워 썼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알게 되었다. 그 애는 조용히 자신의 아픔을 참아 왔다는 것을, 갑자기 조금만 아파도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던 나의 철없는 행동들이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나는 그 애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애가 얼마뒤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요즘도 가끔 그때 일을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프다.
이임경 님/부산시 수영구 망미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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