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 그리움을 참으면 별이 된다. --
손바닥에 그린 햇님
맹인·중복 장애인 시설인 '라파엘의 집'에 첫발을 디딘 지도 어느덧 사 년이 지났습니다. 순간순간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만, 보지도 듣지도 제대로 생각하지도 못하는 원생들에게서 오는 위로가 크기에 오랜 시간이 흐른 줄도 모르고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나 봅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구십사 명이나 되는 '라파엘의 집'의 가족 중에서 가장 큰 어른을 소개하고 싶어서입니다. 이름은 차낙중, 차가 달리는 중에 떨어졌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지요. 낙중이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합니다. 달리는 차 속에서 창 밖으로 내던져져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발견되어 여러 절차를 거쳐 이 곳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낙중이는 가끔 햇살이 따뜻한 곳에 쭈그리고 앉아 손바닥에 해라고 쓰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해만큼은 볼 수 있다고 손짓으로 설명해 주곤 합니다. 누군가가 손목에 시계를 채워 주면 여기저기 자랑하면서 다니다가 문에 부딪혀 상처를 입고서는 양호실에 와 치료를 해 달라고 하는 낙중이의 모습 속에서 어린이와 같은 순수함과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느낍니다. 낙중이는 자기를 버린 부모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 백 원짜리 동전 하나 없지만 궁핍함을 모릅니다. 또한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도 않습니다. 보고 듣고 말할 수 없지만 늘 경쟁속에서 남들보도 더 놓아지고 싶고 더 잘살고 싶어서 허영과 질투, 이기심, 심지어는 아직 빛을 보지도 못한 아기들의 목숨까지 앗아 가고 있는 우리의 잘못된 모습을 낙중이는 소리 없이 지적하고 있는 듯합니다. 늘 껄껄걸 웃으면서 밝게 살아가는 낙중이의 모습을 보며, 제가 그들에게 무엇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그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고 배우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풀내음과 꽃내음이 물씬 풍기는 계절, 나무 그늘에 앉아 해를 바라보며 껄껄 웃으면서 또 다시 저의 손바닥에 '해'라고 써 주는 낙중이의 모습을 보면서 이 작은 길을 충실히 걸어가겠노라 다짐했습니다. 낙중이가 가리키고 있는 은 햇살을 향하여…….
최효숙 님/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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