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죄 값을 치르다
나는 초등학교 삼학년 때 저질렀던 철없던 내 행동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시골의 넉넉치 못한 환경에서 자란 나는 먹고 싶고, 사고 싶었던 걸 항상 마음속에 묻어 두어야 했다. 날마다 친구들이 사주는 과자를 얻어먹으면서 단 한번만이라도 그 애들에게 보란 듯이 과자를 사 줄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혹시 입을 만한 가을 옷이 없나 해서 옷장을 열어 보게 되었다. 기대는 하지 않았다. 몇 년씩 입어 닿을 대로 닿은 옷들만 즐비한 옷장에서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옷장 바닥에 만 원짜리 한 장이 놓여 있는게 아닌가! 길바닥에서 주웠으면 웬 횡재인가 했겠지만 옷장 바닥에 숨겨져 있는 만 원의 주인은 분명 엄마였다. 평소에 용돈 좀 달라고 하면 언제나 없다고만 하시던 엄마가 몰래 그곳에 넣어 두신 것이 분명했다. 그냥 제자리에 두고 내 옷만 꺼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내 머리 속은 이미 가게에 있는 많은 과자와 인형, 친구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누가 볼세라 호주머니에 얼른 그 돈을 넣고 옷장을 원래대로 정리한 다음 바삐 방을 빠져 나왔다. 한 번 마음먹으니까 다음일을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선 다음날 하교 길에 친구들에게 그 동안 사주고 싶었던 과자를 잔뜩 사서 나누어 주었다. 그래도 내 손엔 천원짜리 몇장과 동전몇개가 더 남아 있었다. 평소엔 만저보지도 못하는 큰 돈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은근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만약 이대로 돈을 가지고 집에 들어가면 발각될 것만 같았다. 그 돈이라도 집으로 가지고 가서 용서를 구해야 겠다는 양심의 소리는 불행히도 들리지 않았다. 집 안에 숨겨 놓으면 아무래도 들킬 염려가 많으니까 바깥에다 숨겨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휙 던져 놓고 우산을 쓰고 집 앞에 있는 샘으로 달려갔다. 평소에 눈여겨보아 두었던 큰 돌 밑에 천원을 숨겨 놓겨, 화단 담장에 천원을 숨기고, 교회 담밑에도 숨겨 놓았다. 우산을 쓴 작은 아이가 첩보영화라도 찍는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돈을 숨겨 놓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나는 벌벌 떨리기는 했지만 임무를 훌륭히 완수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가 옷장을 열심히 뒤지고 계셨다. "어디 갔지?"하면서 찾으시는 것은 분명 내가 쓰고 꽁꽁 숨겨 둔 돈 만원일 게 뻔했다. 하지만 나는 앙큼하게 모르는 척했다. "엄마가 너희들 운동회 때 쓰려고 만 원을 옷장에 넣어 놨는데 그게 어디 있는지 안 보인다. 혹시 못 봤니?" 순간 뜨끔했지만 나는 모른척 했다. "몰라, 잘 찾아봐. 엄마가 딴데다 넣어 둔 것 아냐?" 엄마 말씀이 그 돈은 내가 운동회 때 신을 실내화와 김밥 재료를 살 돈이었다는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푹 꺼져 버리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운동회 날 하얀 실내화 대신 운동화를 신고 경기에 참가했으며 김밥대신 하얀 쌀밥을 먹어야만 했다. 그야말로 죄 값을 치른 것이다.
임길자 님/광주시 동구 내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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