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범밭에 심은 꿈
올해도 우리마을엔 밤이 많이 열렸을 것이다. 밤나무가 많은 우리 마을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저절로 익어 떨어진 밤 줍기에 바쁘다. 어릴 때 여동생과 나는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커다란 자루를 들고 밤을 주으러 가곤 했다. 해거름까지 줍고 나면 두세 자루에 둥그런 밤이 가득했다. 주워도 주워도 끝이 없을 것 같은 밤들을 보고 동생과 나는 괜히 들떠서 펄쩍펄쩍 뛰어 다녔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저쪽에 가서 다람쥐나 쫓아 버려라"고 야단을 치셨다. 다람쥐들과 숨바꼭질을 하느라 달음질쳐 가다 보면 멀리까지 나간다. 그러면 또 어머니가 멀리서 손짓하며 부르셨다. "순호야! 해영아!" 아버지는 지게에 밤자루를 짊어지고 어머니는 머리에 얹으시며 "됐다, 이제 집에 가자"하시면 동생과 나는 남겨 두고 가는 밤이 아까워 주머니가 불룩해질 때까지 밤을 밀어 넣었다. 어머니가 쫓아와 큰소리를 치실 때까지......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거적을 깔고 밤을 쏟아 놓으면 난 툇마루에 앉아 그것들을 쳐다보다가 잠을 들곤 했다. 그러나 그 밤은 우리 것이 아니라 돈 많은 어느 도회지 사람의 것이었다. 밤을 줍는 아이는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그렇게 밤이 떨어지던 어느 해 나는 고향을 떠나왔다. 어머니는 빛깔 고운 생밤을 가방에 넣어 주시며 "언제든지 다시 오고 싶으면 돌아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내가 결심한 것을 다 이룰 때까지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 결심이란 돈을 버는 것이었다. 돈을 모으는 것이 무슨 계획이냐고 나 스스로도 부끄러울 때가 많았으나 굽은 어머니의 등과, 갈라진 아버지의 손등을 기억해 내면서 다시금 마음을 다져 먹었다. 내가 이곳 구미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동안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을만 되면 계속 남의 밤밭에 가셔서 밤을 주웠을 것이다. 조금만 있으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도 그 밤밭을 사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조그만 논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그 논을 일구며 여러 자식들 잘 키워 주신 우리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다. 그리고 열심히 일해 그 밤밭을 사서 그곳에 가을이 찾아오면 열심히 밤을 주울 것이다. 비록 가시에 찔려 눈물이 찔끔 날지언정 난 행복할 것 같다.
정순호 님/경북 구미시 공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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