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다람쥐 가족
두 해전쯤 일이었을 게다. 평소 건강하시던 할머니께서 눈이 침침하다고 하셔서 안과에 모시고 갔었다. 접수창구에 의료보험증을 내밀자 이름을 확인한 간호사가 대뜸 "생후 한달도 안 된 애를 데려왔어요?"하는 것이었다. 보험증에 쓰여진 할머니의 생년월일을 끝에 두 자만 본 간호사의 실수였다. "아, 예, 1890년대 분이라......" 내가 웃으며 말하자 간호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백하고도 다시 셋을 더 사신 할머니는 몇 년 전 백내장 수술을 받으신 것을 제외하곤 잔병치레 한 번 없을 만큼 정정하시다. 할머니가 "나도 통장 한 개 맹글어 다고"하시며 평생 저금통장 하나 없이 살아오신 것을 서운해 하시자 아버지는 할머니를 모시고 은행에 가셨다. 컴퓨터 자판을 몇 번이나 두드려 본 은행 여직원은 할머니의 주민등록증을 되돌려 주며 몹시 난처해했다. "......저, 컴퓨터가 1800년도 입력시키지 못해서..... 통장을 만들 수 없겠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백 살 넘으면 통장도 만들지 못합니까"하시면서 벌컥 화를 내셔모시고 갔었다. 몹시 섭섭해하시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아버지는 은행문을 나섰는데 할머니가 눈시울을 붉히며 "밥만 축내는 깡통은 어서 죽어야지......" 라고 말씀하셔서 아버지는 마음이 몹시 아팠다고 하셨다. 고손자 생일까지 기억해 낼 만큼 총기가 좋은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내 어머니. 예순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손 마디마디에는 흉흉한 굳은 살이 박혀 있는 데, 이것은 삼십년 배추장사의 대가이다. 매서운 바람이 들창을 두드리는 새벽녘, 장사를 하러 나가시는 어머니의 대문 닫는 소리에 잠을 깬 나는 따뜻한 이불이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른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차창 밖으로 배추가 그득한 소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도 버스에서 뛰어내리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가슴에 남아 후회가 된다. 그리고 내 아내, 동그란 얼굴의 미소가 예쁜 내 아내는 나에게 시집온 지 팔년이 되어 이제 서른 살이 되었다. 가끔 시할머니, 시부모님까지 모시고 사는 아내를 두고 동네 아낙들이 "어찌 사느냐"며 소근거릴 때에도 아내는 "나같이 행복한 여자 없다"며 내 팔짱을 껴 내 마음을 얼마나 든든하게 해 주었는지 모른다. 할머니. 부모님, 우리 부부 그리고 나의 아이들 이렇게 4대가 한 집에 옹기종기 다람쥐처럼 모여 사는 우리집, 서로를 구속하지 않으려는 배려 속에서 끈끈한 정으로 서로를 엮어 가는 우리집처넘 행복한 둥우리가 또 있을까.
서용석 님/대전시 유성구 어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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