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종이 시계와 어머니
이제 어린 규덕이가 준 종이 시계는 내가 이제까지 가져 본 네 번째 시계였다. 종이 시계를 보며 예전에 내가 받은 시계들에 대한 많은 생각이 밀려왔다. 지난 내 삶 속에 시계의 역사랄까? 그 소중한 의미를 하나하나 더듬어 보았다. 맨 처음 가져 본 시계는 엄마가 착용하던 중고 시계였다. 그 시계는 꿈과 고민이 넘치던 여고 시절을 함께했다. 그리고 엄마의 사랑처럼, 내 조급한 성격을 꾸짖듯 고장 없이 꾸준히 잘 갔다. 말없이 꾸준함을 알려 준 내 첫시계는 대입 체력장을 무심히 주인을 다시는 만날 수가 없었다. '여대생이 된 딸에게'라는 붓글씨 메모와 함께 받은 알이 크고 둥근 시계는 내 두 번째 시계로, 중고가 아닌 새것이었다. 자기 삶에 충실하고 멋진 대학 생활을 보내라는 엄마의 추신은 아직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둥근 큰 시계는 여동생에게 물려 주었고 대신 어머니께서 취업이 되면 시간을 잘 지키는 성실한 사람이 돼야 한다며 반짝반짝 빛나는 금빛 시계를 사 주었다. 하지만, 그 시계는 부모님의 기대에 일조도 못한 채 지금 안방 반짇고리 속에서 벌써 십년을 보냈다. 졸업하자마자 바로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결혼 예물을 받을 때도 그 금빛 시계 때문에 극구 시계만은 사양을 했다. 나는 그 시계를 볼때마다 아리한 슬픔이 느껴진다. '엄마가 외출하실 때 '분'을 바르시니까 긴 바늘은 엄마 바늘입니다. 아가가 오줌눌 때 '쉬'하니까 아가바늘은 '시'바늘입니다. 긴바늘은 분를 나타내고 짧은 바늘은 시를 나타냅니다. 길이가 기니까 엄마바늘은 분바늘, 짧은 바늘은 시바늘입니다.' 규덕이의 바늘이 없는 시계에 쓰여 있는 글을 보며 부모님의 사랑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육십 걸음을 부지런히 걸어 가셔서 어서 오라고, 빨리 오라고 재촉하고 격려한 분바늘이었구나. 자식인 난 겨우 한걸음 밖에 가지 못한 시바늘이었구나.' 어머니는 자식의 한 걸음을 위해 한바퀴를 돌으셔야 했던 것이다. 아이 키우고 살림한다고 친정 부모님께 무심한 딸자식은 규덕이의 종이 시계를 보면서 많은 자책과 반성을 했다. 나도 이제는 세월이 가져다 준 분바늘과 시바늘의 기능을 다해야 하는 위치에 왔다. 부모 노릇의 분바늘 기능만 하고 자식 노릇의 시바늘 역할은 얼마나 충실히 했는지 아니면 분바늘 시바늘 어느 기능도 원활하지 못한 먹통시계는 아닌지, 어느 질문에도 명쾌한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난 우두커니 벽에 걸린 벽시계만 바라본다.
김안나 님/대구시 북구 복현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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