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삼남 씨와 장미 꽃다발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전남 순천에 있는 산부인과 병원이다. 이 곳에서 나는 병원 안내를 담당하고 있어서 분만실을 자주 들르게 된다. 분만실은 탄생의 희비가 엇갈리는 풍경들로 가득한데 가끔 난산을 하는 산모들을 위해 우리 수녀들이 헌혈을 해야 할 만큼 긴박할 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분만 대기실의 제일 가는 화제는 아들이냐, 딸이냐 하는 것인데 마치 국회의원의 당선장을 방불케 하는 팽팽한 긴장감마저 흐른다. 분만실 수녀님이 이제 막 태어난 아기를 데려가려고 하면 보호자들이 수녀님 주변을 에워싸고 묻는다. 먼저 "아들이에요? 딸이에요?"하고 물으면 대부분 시댁 쪽이고, "산모의 건강은 어때요?"하고 묻는 쪽은 친정 식구들이다. 오늘은 점심에 식당에서 신생아실 수녀님에게 삼남씨가 또 딸을 낳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릴 때 내리 딸만 두신 부모님이 그이에게 삼남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시며 "너는 이다음에 꼭 아들 셋을 낳아라"했다는 데 그이 역시 세 딸의 엄마가 되었단다. 오후에는 삼남씨 일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몹시 바빴는데 복도에서 빨간 장미 꽃다발을 든 할아버지와 마주쳤다.
"할아버지, 어디 찾으세요?" "내 며느리가 딸을 낳았다고 해서."
삼남 씨의 시아버님이었다. 할아버지를 삼남씨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 누워서 시아버님을 뵙게 된 그녀는 죄송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아가, 순산하고 아이도 건강하니 고맙구나. 정말 수고했다. 아들이면 그냥 오려고 했는데 네가 딸을 낳고 서운해할까 봐 사 왔다."
할아버지는 들고 온 빨간 장미꽃을 삼남씨 앞에 내미셨다.
"아버님...."
삼남씨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고 나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래서 나는 아직 신생아실 면회 시간이 안 되었지만 특별 면회를 선물로 드리고 싶어 할아버지를 모시고 갔다.
"엄마를 많이 닮았구나."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며느리가 마실 음료수를 산다며 급히 돌아서 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더없이 푸근하고 따뜻해 보여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 부럽다. 삼남씨가 딸을 낳을수록 더 많은 장미꽃을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김정자 님/전남 순천시 장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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