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나의 엄마는 75세
"할머니, 나 왔시유." 밤 열두 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손녀를 기다리시며 아직 주무시지 않는 할머니께 인사를 했습니다. "아이고, 우리 곰 왔냐? 밥 먹어라." 곰이란 말은 집에 걸어 들어오는 걸음걸이가 어기적어기적 둔하다고 할머니께서 지어 주신 내 별명입니다. 할머니는 열일곱 살의 꽃다운 나이에 할아버지께 시집오셔서 시어머니에게 담뱃대로 맞아 가며 지독한 시집살이를 하셨습니다. 그런 지독스런 시집살이에서 팔남매를 키워 결혼시킨 뒤에도 큰아들과 작은아들의 이혼으로 한꺼번에 다섯이나 되는 손자, 손녀들을 키워야 하는 고된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어릴 적 내게 할머니의 말슴은 모두 잔소리로 들렸고 반갑지가 않았습니다. 늘 걱정스런 말투에 똑같은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된 지금의 나는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 마디마디의 서러움과 가슴의 멍울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작년 재작년 두 해 동안 그 무서운 교통사고를 세 번이나 당하셨습니다. 부넠에서 일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당연한 것처럼 여겨왔던 내게 이제 할머니의 모습은 너무 가엽게만 느껴집니다. 눈도 너무 침침해졌다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시며 이제 죽을 때가 가까웠다는 할머니 말씀에 불현즛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라는 이미 잊혀진 존재보다 더 큰 애정과 관심으로 남몰래 눈물을 흘리시던 할머니. 오빠가 군에 입대하기 전, 서럽게 우시며 하시는 말씀이 "엄마가 있어야 뭐든 챙겨 주고 할 텐데. 마, 늙은 망구가 뭘 해 줄 수 있겠냐"고 하시며 자신을 원망하던 그 모습은 우리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습니다. 엄마보다 더 높고 깊은 가슴으로 칠십 오 세에 이른 지금가지 자신을 잊은 채 자식과 손녀, 손자들에게 헌신을 다하신 할머니를 저는 무척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어떠한 값으로도 매길 수 없는 은혜와 아름다움을 나 자신은 새삼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할머니, 이 세상 그 무엇을 준다 하더라도 할머니 없는 세상은 살아가기 힘들 것입니다. 정녕 그것이 할머니께 고통일 지라도 전 늘 바랍니다. 장수하시길요. 너무너무 사랑하고 감사드려요.
박혜진 님/광주시 동구 불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