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반찬을 싸 오시는 아버지
아버지라는 그분은 언제나 낯설고 알지 못하는 그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제가 태어난 지 팔 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스무 살이 된 지금, 제게는 또 다른 아버지가 계십니다. 십오 년 동안이나 친딸처럼 저를 키워 주시고 어머니를 사랑해 주신 분입니다. 지금은 자상하신 아버지 덕택에 어색함 같은 것이라곤 전혀 없지만 사춘기 시절엔 왜 그리도 '아버지'란 소리가 안 나왔는지 모릅니다. "아버지 식사하세요"라는 말은 저를 늘 곤혹스럽게 했습니다. 때로는 학교에서 조사하는 가족사항에 거짓을 써넣기도 하고 동생과 성이 틀리다는 친구들의 의아한 눈빛을 받을 때면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어머니를 원망하며 혼자서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집에서 한참 떨어진 광주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어 혼자 자취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약한 제 몸을 걱정하셨지만 저는 알 수 없는 해방감에 마음이 조금 설레기도 하였습니다. 자취 생활을 시작한 지 일주일도 채 안 돼 아버지가 반찬을 싸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뒤 아버지는 두 시간 거리인 해남에서 광주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반찬을 몰래 갖다 놓고 가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몹시 아파 하루를 결석하고 이튿날 학교에 등교했습니다. 4교시 수업이 시작될 무렵 아버지가 학교를 찾아오셨습니다. 자취집에 오셨다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제 얘기를 전해 들으셨나 봅니다. 아버지는 약 한봉지를 내밀며 몸조리 잘하란 말만 남기고 곧바로 가셨습니다. 멀어져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한 저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하는 못난 자식이었습니다. 학교가 파한 뒤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열어 보니 한쪽엔 아버지가 챙겨 오신 반찬통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반찬통을 싸온 녹색 보자기는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고 그 밑엔 얼마의 용돈과 평소에 먹던 약봉지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잊지 말고 잘 챙겨 먹으라는 뜻이었겟지요. 그때서야 저는 내게도 어느 누구보다 부럽지 않은 아버지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아버지도 어느덧 환갑을 목전에 두고 계십니다. 저와 어머니를 십오 년간이나 돌봐 주신 아버지의 머리 위엔 어느새 흰 눈이 내렸습니다. 그 동안 말 못할 시련에 아버지 얼굴에는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 서려 있는 듯 느껴집니다. 이제서야 "아버지,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입밖에 내놓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기다니 저는 참 못난 딸입니다.
오정순 님/광주시 동구 계림 1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