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할머니의 애타는 기다림
도서실에 갔다가 수퍼에 들러 집으로 막 들어가던 길이었다. "다녀왔습니다"라는 말을 하기가 무섭게 할머니가 내 손을 덥석 잡으시고는 혼을 내듯 말씀하셨습니다. "아이고 이것아, 이 할미 말라 죽는 걸 볼려고 이제 돌아오나." 그리고는 연신 눈물을 찍어내시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 무슨 일인가 할머니께 여쭈었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도서실에 갔다가 오는 사람 붙들구요." 할머니는 내 손을 붙들며 내가 거짓말을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셨다. "네가 언제 그랬어. 슈퍼에만 갔다 온다고 했지. 슈퍼 간 지가 언젠데 두서너 시간이 지나야 오니?" 그제서야 나는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귀가 어두우신 할머니가 슈퍼에 들렀다가 도서실 다녀온다는 내 말을 끝까지 다 알아듣지 못하신 것이다. 그래서 십분, 이십 분이 지나도록 손녀가 돌아오지 않으니 혹 나쁜 사람이 데려갔나, 무슨 사고라도 당한 것이 아닌가 해서 노심초사하고 계셨던 것이다. 더 이상 방안에만 앉아 있을 수 없었던 할머니는 무작정 밖으로 뛰어나와 나를 찾아 헤매이셨다. 연세가 칠십이 넘으신 할머니는 오르막길을 수십 번이나 오르내리셨다. 내 걸음으로 이 삼분 걸리는 그 거리를 할머니는 아주 힘들게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신 것이다. 애타에 기다리는 그 초조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나는 할머니가 괜히 걱정을 한다 싶어 마음과는 다르게 입을 삐죽거렸다. 어찌나 놀라셨는지 할머니의 얼굴은 그때까지도 창백했다. 그날 밤, 할머니와 등을 맞대고 누워있는데 자꾸만 어두운 골목 길을 서성이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리고 할머니를 덮석 안아드리지 못한 것이 너무도 후회가 되었다. 슬며시 등을 돌린 나는 잠버릇인 양 할머니의 작은 몸에 팔을 둘러 꼭 껴안았다.
김선아 님/전남 순천시 덕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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