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빨리 밥 먹어라
"잘못했다고 빌어라." 이 년 만에 집에 들어서는 내게 하신 할머니의 말씀이다. 이 년전, 나는 할아버지를 속이고 어릴 때부터 꿈꿔 오던 수도의 삶을 선택하였다. 그때 할아버지의 반대가 너무 심해 나는 할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노라고 말씀 드린 뒤 몰래 수녀원에 갈 준비를 하였다. 마지막까지 사실을 몰랐던 가족들에겐 본의 아닌 허락을 받아냈지만 할아버지께는 끝내 아무런 말슴을 드리지 못했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고 있던 나는 수녀원에 가기 전까지 할아버지께 잘해 드리려고 노력했다. 월급날엔 당시 구하기 힘들었던 청자 담배를 사서 부치기도 하였다. 할아버지는 내가 봉투째 보낸 첫 달 월급을 돌아가실 때까지 안 쓰고 지갑 속에 넣어 다니며 동네 어른들게 자랑하실 정도로 나를 끔찍하게 생각해 주셨다. 일찍 부모를 여윈 할아버지는 장남이신 나의 아버지가 6.25전쟁 때 전시하자 아버지에게 쏟았던 사랑을 손녀인 나에게 주셨다. 그런 사랑을 어릴 때는 잘 몰랐지만 커 가면서 그 사랑이 나의 마음에 늘 채워져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말씀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술을 드실 때마다 "내가 오래오래 살아서 우리 손녀 시집갈 때 상객으로 따라가야지"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수녀원에 입회하였고, 처음엔 직장에 있는 것처럼 편지를 드렸다. 그러나 거짓말로 쓰는 편지가 어려워 점점 편지쓰는 것도 줄였다. 그러뎐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외출하셨다가 내가 수녀원에 간 사실을 듣게 되었다. '이젠 날벼락이 떨어지겠구나'하며 온 가족이 떨고 있는데 할아버지께서는 눈물만 흘리셔서 또 한번 가족들을 놀라게 하셨다. 그 엄하신 할아버지께서 우시기만 하시니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아팟을 것이다. 수녀원에서 보내 주는 휴가도 할아버지께 붙잡힐 것 같아 처음에는 가지 않았다. 집에서도 언젠가는 내가 돌아오겠지 하고 퇴거도 해 주지 않았다. 그런데 선거를 앞두고 주민등록 정리를 해야 된다며 집에서 나를 데리러 왔다. 집으로 들어서는 나에게 할머니는 "할아버지께 잘못했다고 빌어라"하셨다. 내가 방에 들어서자 누워 계시던 할아버지께서는 벽쪽으로 등을 돌리셨다. 나는 할아버지 등 뒤에서 울기만 했다.
"배고프겠구나. 어서 건너가서 밥 먹어라."
갑자기 할아버지의 다정한 음성이 들렸다. 그제서야 나는 "할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저는 잘 있었지만 할아버지 걱정에....."라고 소리내어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빨리 밥 먹어라."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다 용서되엇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밤을 세워 가며 할머니와 나는 수녀원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도 옆에 누우셔서 다 들으시고 수녀원도 사람 살 만한 곳이란 걸 이해하셨고, 또 내 얼굴이 여전히 밝고 행복해 보임을 아시고 모든걸 받아주셨다. 할아버지의 큰 사랑은 나의 거짓말까지 다 품어 주신 것이다.
이엘리아 님/경남 마산시 합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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