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수첩 - 김용택 : 좋은생각
아들을 살린 야속한 아버지
내게는 어릴 때부터 절친하게 지내온 K라는 친구가 있다. 지금은 조그만 제조업을 하고 있는 그에게는 어린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어 늘 아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K의 아버지는 마을에서 제법 큰 질그릇공장을 하셨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공장은 부도가 났고 그의 어머니는 빚에 쪼들리다 못해 삼남매를 남겨두고 집을 나가셨다. 아버지는 홧김에 술을 드시고 때론 아이들에게 손찌검까지 하셨다. 그러다가 남매를 친척집에 맡기고 당시 일곱 살 된 K만을 데리고 광주로 올라왔다. K의 아버지는 거기서 손수레로 짐을 나르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밤이었다. K는 여느때처럼 일나간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 잘 곳도 없었던 K는 온기도 남아있지 않은 다 타버린 연탄재를 끌어안고 눈발을 피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정이 훨씬 넘어 술에 잔뜩 취해 돌아왔다. 그리고는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있는 아들에게 엄한 명령을 내렸다. "내가 수레에 올라가 누워 있을 테니 너는 앞에서 끌어라!" K는 아버지가 야속하고 미웠지만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밤새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손수레를 끌엇다. 새벽녘에야 K의 '수레끌기'는 끝이 났다. 언제 벗겨졌는 지 검정 고무신 한 짝은 간데없고 발바닥에서 흐른 시뻘건 핏방울만이 하얀 눈위에 점점이 박혀 있었다. K는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지만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얼마 후 친척집에서 생활하던 누나도 점심을 먹고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병원에 가 보지도 못하고 죽고 말았다. 급체라고 예상만 했을 뿐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K는 아버지에 이어 누나도 잃었다. 이후 K와 그의 형은 각기 다른 곳으로 보내져 처절한 생존 투쟁을 해야만 했다. K는 초등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공장을 전전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면서도 야학에 등록아여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어 사랑하는 여인과 가정을 꾸미고 아들을 낳은 K는 무척 행복해했다. 그러나 그때, 어려서 헤어져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형이 '간암 2개월 시한부 인생'이라는 절망을 안고 폐인이 되어 나타났다. K는 그런 형을 임종때까지 온 정성을 다해 돌봤다. 그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서야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잇게 되었노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밤, 밤새 수레를 끌라던 명령은 자식을 얼어죽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사려 깊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만약 그날 춥다고 둘이 부둥켜안고 노숙이라도 했다면 둘 다 얼어 죽고 말았을 것이라며..... 김기준 님/광주시 북구 운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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