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태길편"
김태길(1920~2009)
철학자. 수필가. 충북 중원 출생. 서울대 철학과 및 대학원 졸업.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원 졸업. 철학 박사. 연세대. 서울대 교수 역임. 학자 특유의 논리적인 필치로 수필을 쓴 인물. 수필집으로 "웃는 갈대" "빛이 그리운 생각들" "흐르지 않는 세월" 등이 있고 "윤리와 정치" "한국 대학생의 가치관" "새 인간상의 정초" 등 저서가 있다.
인간의 존엄성과 성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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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이란, 쉽게 말하자면 '정성스럽고 참되어 거짓이 없음'을 말한다. '성, 실' 두 글자 가운데서 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성이며, '성'이 유교의 도덕 사상 가운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성'의 개념을 깊이 다룬 유교의 고전으로서 '중용'이 널리 알려져 있거니와, '중용'에서는 '성'을 단순한 윤리적 개념으로 이해함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정립함으로써, 윤리의 절대적인 바탕으로 삼을 것을 꾀하고 있다. '중용'에, '성실한 것은 하늘의 도다. 성실하고자 힘쓰는 것은 사람의 도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의 본뜻을 알기 쉽게 풀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대체로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 첫째는, 성실을 '천리의 본연'이라고 이해한 주자학의 전통을 따라서, '성실은 천지 자연의 이법으로서, 만물의 실재와 생성을 좌우하는 기본 원리이며, 이 성실의 원리를 본받아서 진실하고 거짓이 없어 조금도 망령됨이 없도록 살기에 힘쓰는 일은 인간의 도리다.'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길이다. 둘째는, 정현의 해석을 따르는 것으로서, '본래부터 성실의 경지에 도달해 있는 것은 하늘이 낳은 성인의 도요, 수양과 노력으로써 성실의 덕을 닦고자 힘쓰는 것은 범용한 일반인의 도다.'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길이다. 위에 인용한 '중용'의 구절 바로 다음에 나오는 말을 보면, 둘째 번 해석이 보다 합리적인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중용'의 다른 여러 구절들을 종합해 볼 때, 역시 첫째 번 해석을 따르는 것이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성 또는 성실을 천지 자연의 근본 원리로 보든 혹은 인간적 행위의 세계에 국한된 원리로 보든 그것이 우리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라고 믿는 것이 유교 사상의 전통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공자는 지, 인, 용을 덕의 가장 주요한 것으로 가르쳐 왔거니와, 그 지, 인, 용의 공통된 바탕을 이루는 것이 바로 성인 것이다. 유교에 있어서 성은 실로 인격을 완성하고 통일하는 기본 원리다. 성을 천지의 도니 자연의 이법이니 하여, 형이상학적인 관념을 끌어들인다면, 이야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의 문제를 떠나서 일상 생활에 있어서의 행위의 원리로서 볼 때, 성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우리들의 상식으로도 그 윤곽은 알 수 있음직하다. 쉽게 말해서, 성실이란 무엇보다도 진실하고 거짓이 없음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다만 여기서 진실하고 거짓이 없다 함은 단순히 남을 속이는 일이 없다는 뜻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대할 때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나 정성을 다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거기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이 깔려 있으며, 처지를 바꾸어 남의 사정을 깊이 고려하는 너그러움이 있다. 성실의 도는 결코 멀리 있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연의 정'을 따라서 삼가 생각하고 삼가 행동하는 가운데에 바로 성실이 있다. 그러기에 '중용'에도, '도는 사람으로부터 멀지 않다. 사람이 도라고 하면서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도라고 말 할 수 없다.'고 한 공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도덕의 근본 원리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성실의 길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가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헛되이 먼 곳에서 구할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일상생활 속에서 찾아야 한다. 자기가 현재 처해 있는 그 자리에서 자기 앞에 닥친 일에 관하여 비록 그것이 사소한 일같이 보이더라도, 일거일동을 참되게 함으로써 말과 행동 사이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것이 곧 성실을 실천하는 길이다. '중용'에,'일상 행해야 할 중용의 덕을 실천하고, 일상 생활에서의 말을 삼감으로써, 행동에 부족함이 있으면 힘을 다하여 애쓰고, 말에 지나침이 없도록 힘써 조심한다. 말은 행동을 돌이켜보고 행동은 말을 돌이켜본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 점을 말한 것으로 이해된다.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조심을 하고, 행동 하나 할 때마다 앞뒤를 생각하라.'는 유교의 가르침은 현대인에게는 지나치게 근엄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성실의 근본 정신이 지나치게 근엄하고 쉴사이없는 긴장 속에 조심만을 거듭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말한다면, '성실'이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충실한 동시에 남에게도 충실한 마음의 자세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유교적 해석을 따른다 하더라도, '성실'의 근본은 '진실되고 거짓이 없음'에 있는 것이요, 도학자적인 근엄성이나 실수할 것을 두려워하는 위축된 소심성에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깊은 곳이 옳다고 믿는 바를 따라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다름아닌 성실의 덕이라고 보아야 한다면, 성실은 참된 용기를 포함하는 것이며, 적극적인 행위의 원리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유교의 지도적 사상가들은 성을 지와 인과 용이 그 가운데 포함되는 큰 원리로 보고, 인격의 완성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덕목으로서 이해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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